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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성삼일의 상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3,151 추천수0

[전례와 상징] 성삼일의 상징

 

 

주의 수난 성지 주일

 

이 주일에는 그 명칭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의미와 예절이 들어 있다. 첫째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지(聖枝) 축성과 행렬, 둘째는 수난을 기념하는 예수 수난 미사이다.

 

이 주일의 옛 명칭은 성지 주일이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또는 올리브 가지를 높이 들고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였지만, 이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이 시작되기 때문에 수난 주일이란 명칭이 덧붙여지고 또한 이날부터 성(聖)주간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주일 전례의 두 가지 큰 주제와 상징은 주님의 승리(여기서 ‘승리의 빨마가지’란 말이 사용됨)와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수난이다. 이 주간은 빠스카 신비를 이룩하는 중대한 시기로서 전례 주년의 절정인 성삼일을 포함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주간은 성주간의 시작이요 사순절의 끝이다. 성 목요일 주의 만찬 저녁 미사의 시작으로 사순절은 끝나고 성찬의 전례를 부활 성삼일의 시작으로 보며 부활 주일 저녁기도(성무일도)로서 마친다.

 

성지 주일의 특정은 긴 행렬이다. 성서의 말씀과 전통에 따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자취를 더듬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자는 취지이다. 미사에 앞선 ‘예루살렘 입성 기념’으로서의 행렬이지만, 오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군중도 아니고 성서에 나타난 사실의 재현도 아니다.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의 행렬은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하여 드러내신 결과에 대한 고백이요 승복이다. 즉 죽기까지 순명하여 높이 되신 분, 구원자, 신앙 공동체와 온 세상의 주님이심을 분명히 밝히는 행위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또한 예수님께로 향하여 가고 있는 도상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절에 발생한 일을 기초로 하여 우리 교회 공동체는 불안한 장래에 대한 희망을 구축하고 있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는 외침은 군중의 구호만이 아니라 부활 신앙의 확고한 기대를 전제로 한다.

 

성지(聖校)는 승리와 평화의 상징이고 이날 축성한 성지를 각 가정에 보관하는 것은 이 성지가 액운을 방지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가져온다는 관습에서 왔다. 그러나 축성된 물건이나 장소는 어떤 요술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가지라는 표시이다.

 

이날 주례 사제가 홍색 제의를 입는 것도 홍색이 승리의 색이기 때문이다.

 

 

성 목요일

 

성 목요일 예절은 부활 축제의 서곡이요 전주곡이다. 서곡은 시작을 알린다. 옛 유다인들의 전통상 하루의 시작은 전날 저녁이다. 대축일과 주일의 전례도 이를 모방하여 전날 저녁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성 목요일 저녁도 부활 성삼일의 첫날이요 성 금요일에 속한다.

 

이날 주의 만찬 저녁미사는 두 가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빠스카 신비의 시작인데 이를 셋으로 구분하여 수난 사망(성 금요일), 무덤에 묻힘(성 토요일), 부활(부활 주일)로 볼 수 있다. 만찬 미사의 입당송은 성삼일의 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삼아야 하리니, 그 안에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부활이었으며, 그로써 우리는 구원과 자유를 얻었도다”(주의 만찬 저녁 미사 입당송).

 

둘째로 사도들과 함께 한 주의 만찬이다. 이 기념은 예수님의 전생애를 배경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 잔치 안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초대하여 예수님 자신이 겪은 비참과 그 극복을 드러낸다. 즉 남을 위하여 부숴지고, 남을 위해 나뉜다. 이 성찬 예절 안에서 영광과 승리가 전해지며 제자들의 파견이 계속된다.

 

미사 중 대영광송을 노래할 때 쇠종을 울리고 부활 성야 미사 전까지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주님께서 비참하게 돌아가시기까지 자신을 낮춘 겸손을 표시한다. 그 대신 목각으로 소리를 내는데 쇠종이 7~8세기경 도입되었으므로 그 사용 이전 시기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또한 성삼일 동안의 미사 중 오르간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종소리와 마찬가지로 ‘귀의 절제’를 뜻한다. 제단을 벗기고 십자가를 보로 씌움은 ‘눈의 절제’를 위함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다.

 

본당에서는 사목상 필요하다면 세족례를 거행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사제도 선발된 남자 교우들의 발을 차례로 씻는 예식을 행한다. 예수님은 이 예식을 통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보였고 동시에 신자들에 대한 봉사 정신을 가르쳤다.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요한 13,17).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다음 사제는 축성된 성체를 미리 마련된 다른 감실로 행렬을 지어 옮겨 모신다. 그리고 신자들은 밤새도록 계속하여 성체조배를 한다. 이것은 초세기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묻힌 시간을 40시간으로 보아 부활 전까지 단식을 하였고 십자가나 성체를 상징적으로 묘지에 모셔두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죽음을 앞둔 적막한 이 밤에 예수님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마태 4,40-41).

 

 

성 금요일

 

예수님이 돌아가신 성 금요일은 한마디로 애통과 비탄의 날이다. 그러나 그 애도는 그리스도를 위로하는 초상집 조문이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으므로 성 금요일 예절의 의미는 내 죄와 세상의 죄를 슬퍼하고 통회하는 것이다.

 

주의 수난을 기념하는 이 예식은 말씀의 전례, 십자가의 경배, 영성체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사제와 부제들은 홍색 제의를 입고 예식을 거행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홍색은 승리의 뜻이다. 애도의 뜻으로 옛날에는 검은색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승리의 홍색이다. 홍색은 또한 순교자와 성령의 색이다. 그리스도는 순교자의 전형으로서 진리를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당하셨다.

 

십자가 경배 예절은 4세기 예루살렘 교회 때부터 행해졌는데 이것은 신자 개개인의 신심을 위한 것이었다. 성 금요일, 실제로 예수께서 수난당하셨던 골고타 후면에서 예루살렘 주교가 십자가 보목(寶木)을 손에 잡고 앉으면, 신자나 예비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 보목과 명패(名牌)에 친구(親口)하였다. 이 예절이 나중에 근처의 교회에 전래되면서 십자가 보목이 아닌 십자가로써 예절이 행해졌고 7세기에 로마 교회가 전례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경배 형식은 교황 비오 12세의 전례 개혁 때 생긴 것이다.

 

십자가의 경배 예절을 통하여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거듭 새롭게 다진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명의 나무요 승리의 표시로서 공경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또 다른 거룩한 표정은 없다.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분의 부활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왜 십자가 경배를 이처럼 성대하게 하는가? 골로사이서 1장 16-20절은 여기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답변이다.

 

 

성 토요일

 

교회력 규정은 성 토요일을 지나가는 정도로 언급하였다. “성 금요일과 때로는 성 토요일에서 부활 성야 예식 전까지 어디서나 부활 단식이 실시된다.” 이 대재는 개인적인 금욕 때문에서가 아니고 주님의 죽음에 관한 회상 때문이다.

 

미사 지침은 성 토요일에 대하여 두 가지 중요점을 지적한다. “교회는 성 토요일에 주님의 무덤에 머물고 그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한다. 미사 봉헌은 없고 제단은 벗겨 진 채 있다.” 이날은 묻힘과 고성소에 내림으로 요약된다. 십자가의 후속 연출이고 부활의 전주이다. 성찬의 전례는 없지만 교회는 이날 성무일도를 바친다. 토요일 저녁 기도를 갖는 유일한 날이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로 본다면 성 토요일은 성 금요일과 부활 축일을 연결하는 날로 이해할 수 있다.

 

[경향잡지, 1988년 3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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