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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재의 수요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0 조회수3,076 추천수0

[이 달의 전례] 재의 수요일

 

 

전례적 개관

 

초세기 교회 때는 ‘공적참회’라는 게 있었는데, 이는 특별히 ‘중죄(Peccatum mortalis)’라고 일컫는 배교, 살인, 간음과 같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신자 공동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사순시기의 시작과 더불어 거행되는 이러한 공적참회의 전례는 처음에는 사순 제1주간의 월요일에 거행되다가 훗날 재의 수요일로 옮겨 행해지게 되었다. 이때 참회자 신분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머리에 재가 뿌려졌고, 재를 받은 참회자들은 원조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의 추방에 유추하여 교회 공동체에서 일정기간 내쫓는 의식으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렇게 특별한 참회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속죄의 표현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일은 이미 구약성서나 고대 이방인 문화권에서는 낯익은 의식이었다.

 

예수께서도 갈릴래아 호수 주변 도시인 코라진과 베싸이다에게 그들의 뉘우치지 않는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질책하실 때 참회의 표시인 이 상징을 인용하신다.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이와 같은 실천은 초대교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교회의 공적참회 제도가 10세기 말경에 없어진 데 비해, 재를 뿌리는 의식은 모든 신자들에게도 행해짐으로써 그대로 보존되었다. 교황 울바노 2세는 1091년 이 관습을 모든 교회에서 보존하기를 권고하였다. 이 예식에서 성직자들이나 남자들에게는 머리 위에 재가 뿌려졌고, 여자들에게는 이마에 재로 십자표를 그었다. 재 축성 기도문은 11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나서 다음 세기인 12세기에 와서야 지난해의 성지가지를 태워서 재를 만들라는 지침으로 명문화 된다.

 

고대사회와 구약성서 그리고 최근 교회의 문헌에 이르기까지 재는 항상 덧없음과 무상, 슬픔과 참회의 상징으로 표시되므로, 전례력의 새 규정은 재의 수요일에 온 세계에서 단식일로 지내며, 재로 십자표를 긋도록 고집한다.(참조,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침” 29항) 새 미사경본에 의하면, 재의 축성은 복음과 강론 후에 따라 오는데, 두 종류의 축성기도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두 기도문 안에는 사순시기의 고유한 목적으로써의 부활축제가  암시되어 있다.

 

“…우리로 하여금 사순절의 재계를 충실히 지킴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하여 당신 성자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사순절의 열심한 수련으로 죄의 용서를 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하소서.”

 

성수를 재에 뿌린 다음, 재는 신자들 각자에게 주어진다. 함께 하는 성구는 전통적인 형태인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참조, 창세 3,19)”라고 말하든지 아니면 예수께서 당신 공적 활동 시작 때 하신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말할 수 있다. 재를 나누어 주는 동안 후렴(참회시편 50)이나 응송, 또는 다른 적합한 성가를 부르고, 예식은 보편지향기도로 끝맺는다.

 

 

묵상

 

이제 우리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을 준비하는 특별시기인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그 시작의 표지가 바로 재입니다. 재는 어떤 분명한 사실을 알려주는 표지입니다. 재는 헛됨과 침몰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개혁과 쇄신 그리고 생명의 길로 초대받습니다. 부활과 세례를 새롭게 상기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구원된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됩니다. 새 사람이 되는 여정에서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정화, 포기 그리고 변화입니다.

 

사순시기는 정화의 때입니다.

 

재가 뜻하는 상징은 단순히 먼지나 땅, 허무함과 죽음 이상의 것을 가리킵니다. 재는 연소와 정화를 상징합니다. 고대사회 사람들은 재를 정화의 표지로 여겼습니다. 불과 용광로 안에서 녹아 찌꺼기가 타버림으로써 순수하게 된 금속의 형태는 부활까지 다가가는 40일 여정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순수한 자신의 모습을 위해하는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정화와 쇄신을, 부활로 나아가는데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태워버리고 의지를 정화시켜야 하는 임무를 알려줍니다. 불을 가함으로써 빛을 낼 수 있는 금의 모습은 재의 표지를 부활의 빛 안에서 드러나게 합니다.

 

사순시기는 포기의 때입니다.

 

지난 세기의 엄한 단식규정은 이제 그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은 부분적으로 맛있는 생선요리를 맛보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식은 그 자체로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고생스레 체중을 빼게 하는 단식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다른 한편 부활절에 앞서 포기와 단식의 옛 관점을 새로이 이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포기는 단지 그 시작일 뿐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하여 자유로워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때때로 무엇을 포기함으로써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밝아지고 눈이 맑아지는, 그럼으로써 내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색다른 체험 말입니다. 집착과 욕망을 포기하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엄격한 단식에서 성서적 가치관의 세계, 곧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으며 사순시기에 소비를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끔 우리를 도와준다는 동기부여를 합니다.

 

사순시기는 변화의 때입니다.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은 단순히 사순시기 마지막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은 이미 우리 안에 실재가 되어 있습니다. 부활과 우리의 세례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봄을 생각나게 하는 부활절이란 말은 새로운 출현을 가리킵니다. 생명은 겨울을 헤쳐 나갑니다. 서리와 얼음을 뚫고 새 봄의 전령이 나타납니다. 부활절 파스카 사건은 그러한 출현입니다. 세례를 통한 삶,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한 공동체의 삶, 희망과 부활절 알렐루야의 삶은 어두운 세상을 깨쳐 나오는 것이며 곧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40일이란 긴 시간의 마지막에 부활의 큰 잔치를 거행하기 위한 쇄신의 길에 우리는 초대받았습니다. 40이란 숫자는 이 길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암시합니다. 노아와 엘리야, 에집트에서 구출된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광야에 머무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정화와 포기 그리고 변화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 사순절에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통하여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십시다.

 

[월간 빛, 2005년 2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월성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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