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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 <연중 제2주일 본문+해설+묵상> - 김수복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3 조회수2,092 추천수0
 

연중 제2주일


제1독서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ㄱ.2ㄴ-3.7-8ㄱ.9와 10ㄱㄷ(◎ 3)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들을 전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주님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들을. ◎

○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

○ 거룩한 차림을 하고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로다.

주님께서는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시도다.” ◎ 

 

제2독서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2테살 2,14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도다.

◎ 알렐루야. 

 

복음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23(22),5 참조

주님께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하나이다. 

 

해설과 묵상


제1독서(이사 62,1-5) 해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시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예언자의 이 노래는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시기에 첫 번째로 기록되었을 공산이 크다.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히브리인들 눈에는 꿈속에 그리던 사랑스런 예루살렘이 이미 영광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폐허가 되어 참담하게 변해 버린 모습으로만 비쳤다. 이에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장차 구원을 받아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선언한다. 하느님께서 입을 다물고 계시는 동안 시온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이제 하느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시니 새로운 빛이 예루살렘을 비추리라는 것이다.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3절)는 상징적인 표현과 결혼생활에 견준 비유들은(4-5절)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흡족해 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느님만이 가지신 변함없는 사랑은 한때 탈선하고 간음한 이스라엘을 씻어 주고 깨끗하게 하시어 그들이 옛적 하느님의 순결한 신부였을 때 누렸던 신선한 기쁨을 되찾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온 인류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하느님을 외면하여 실망에 빠져 버린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마치 인자한 신랑이 타락한 신부를 용서하여 받아들이듯이 구원하고자 하실 것이다.


화답송(시편 96[95],1-2ㄱ.2ㄴ-3.7-8ㄱ.9와 10ㄱㄷ[◎ 3]) 해설

<전하여라,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들을>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모든 백성의 주님으로 찬양하면서 성전 안에서 노래 부른 시편이다.

이 시편을 꿰뚫는 흐름은 기쁨이다. 하느님의 왕권은 구원의 능력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노래 부르며 찬양하면서 묘사한 하느님의 모습은 장차 오실 ‘사람이 되실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예언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당신 자신을 낮추며 다스리는 분, 당신 권능을 오로지 사람들이 누릴 기쁨을 위해서만 행사하시는 분이 오시고야 말 것이다.


제2독서(1코린 12,4-11) 해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이끌어야 할 바람직한 질서를 논하면서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공동체 안에서 특은(은사) 또는 영적 선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바오로가 8-10절에서 열거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특은은 성령께서 사람들이 미리 정해 놓은 일률적인 틀에 얽매이기를 거절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다양한 사명을 주신다.

성령께로부터 비롯된 그 다양한 사명과 소명이 서로 갈라지고 대립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바오로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갈라져 싸울 위험은 늘 존재한다.

성령께서는 다양성을 통하여 통일된 조화와 일치를 바라시며 각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개별적으로 받은 소명이나 특은은 그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을 위해 발휘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교회 전체와 인류 전체를 위하여 발휘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 같은 성령의 의도에 충실해야만 온갖 특은은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며 이웃과 사회에 가치 있는 결과를 맺을 것이다.


복음(요한 2,1-12) 해설

<예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복음해설 1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신학적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적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증표이다. 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은 예수께서 누구이신가를 차차 계시해 줄 일곱 가지 증표 가운데 첫 번째 증표였다.

이 첫 번째 증표가 어떤 모양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계시해 주고 있는가? 특별히 메시아 시대는 풍요로운 시대일 것임을 입증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인류 역사를 잠깐 보면, 잔치 책임자가 한 말마따나 하느님께서 참으로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 판에 남겨 두셨음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이 만진 모든 것을 바꾸고 변형시키신 것이다.

잔치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기뻐 들뜨게 한다. 그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더 이상 지나간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언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이르렀다. 하느님과 온 인류가 혼인잔치를 벌이는 ‘때’가 이른 것이다(참조. 이사 62,2-5). 이 ‘시간’과 ‘때’는 십자가 위에서 매달려 죽으신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실 신비가 완성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가나 혼인잔치에서 그 신비를 미리 맛보게 하셨다.

 

복음해설 2(묵상 아래를 보세요)

 


묵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귀양살이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기대하던 기쁨은 맛볼 수 없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도읍은 하느님께로부터 영영 버림받은 것처럼 비쳤다. 그러나 예언자는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다.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이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이루어 주실 구원을 선포한다. 즉, 하느님의 ‘정의’가 꽃피고 하느님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리라고 선포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숨어서 기어들어오지 않고 모든 사람이 똑똑히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등장할 것이다. 예루살렘이 장차 하느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왕관’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마치 신랑이 신부를 마음에 들어 하듯이 흡족해하실 것이다. 새로운 이름이 그 도시의 새로운 상태를 말해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마련하여 줄 것이며 파멸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예언자들이 고대하던 그 ‘때’가 예수님과 더불어 도래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고(11절),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혼인잔치가 벌어진다. 구원의 시대가 혼인잔치로서 개막된다는 사실이 요한 복음서 저자에게는 매우 뜻 깊은 것이었다. 그 혼인잔치에 예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당신 능력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물을 술로 바꾸신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여 계신다는 증표가 된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혼인잔치 기적에서 빵을 많게 한 기적에서와는 달리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술’을 예수님 자신으로 제시하고 예수께서 인간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려 함이 분명하다. 술은 메시아 시대에 넘칠 공동선을 나타낸다. 좋은 술이 풍성하게 넘쳤다는 것은 메시아 시대가 이미 와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이야기에서 요한 복음서 저자의 관심사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도우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예언자들이 고대하던 구원, 그리스도께로부터 시작된 구원은 비단 종말론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그 구원은 마지막 때에 가서 완성되겠지만 역사 과정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갖가지 특은과 직무와 자질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바오로가 열거한 몇 가지 예로 끝나지 않고, 각 사람이 온갖 모양으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7절). 모든 사람이 성령과 성령의 특은을 받고 있다. 각 사람이 성령께로부터 받은 특은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키워갈 일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공동체의 일치와 조화에 이바지하는 일을 자기 존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실상 각 사람이 처해 있는 특수한 조건과 자질과 능력과 기회는 동일한 성령께로부터 비롯된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은은 어디까지나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각 사람 안에 계시는 성령을 존중하면서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의무가 있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열어 주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함께 완성을 향해 걸어갈 때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복음해설 2(번역해 놓은 해설입니다.)

 

시작하는 주간의 절정:

카나의 혼인잔치(2,1-12)

이 이야기는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시점을 가리키면서 시작한다(2,1). 그 시점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묘사하는 첫째 주간의 절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요한 복음서 저자가 이 일화에 영광의 나타남(1,51에서 예고한 나타남) 또는 계시라는 의미를 주고 있음을 나타낸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2,11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라고 말한다.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말하기 위하여 탈출 19,16에서도 사용한다.

이 이야기는 갈릴래아 카나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를 무대로 삼고 있다. 저자는 즉시 그곳에 예수님의 어마니 마리가가 계셨다고 말한다(2,1). 이 지적은 이미 이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수행할 역할을 엿보게 해 준다. 예수님과 당신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와 계신다(2,2).

이 이야기 줄거리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없구나.”(2,3)라고 당신께 귀띔한다. 예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라고 답변하신다. 이 답변은, 언뜻 보기에 무뚝뚝하게 들리겠지만, ‘예수님의 때’에 대한 언급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를 들여놓는다. 그 ‘때’는 기적들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때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고 또는 칼바리아에서 절정에 달할 수난의 때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12,23 이하). 예수님의 답변에 대한 반응으로 마리아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라고 일꾼들에게 시킨다. 마리아가 한 말은 이스라엘이 계약을 이행하겠다고 서약하는 양식(樣式)을 담고 있다(탈출 18,8; 24.7). 마리아가 한 말로 요한 복음서 저자는 마리아를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소개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마지막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제 이야기는 핵심으로 들어간다. 저자는 유다인들이 정결례에 쓰는 물독 여섯 개가 그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 물독들에다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런 다음 그 물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라고 명하신다(1,7-8). 과방장은 일꾼들이 가져온 포도주를 맛보고는 감탄한다. 그는 신랑을 불러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2,9-10)라고 말한다. 이때 기적은 포도주를 넘치게 주셨다는 데 있다. 이 기적은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입증한다(참조. 창세 49,11-12; 타르굼 네오피티; 2바룩 29,5). 과방장이 포도주 맛이 좋은 것을 알고 신랑에게 한 말은 기적이 일어났음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만들어주신 ‘좋은 포도주’에 대한 언급은 공관복음서들에도 나온다(참조. 루카 5,37-39). 루카 복음서 저자는 새 가죽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 비유에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5,39)라는 말을 덧붙인다. 과방장이 놀란 사실에 대한 언급은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로기온’(예수님의 말씀)과 카나 이야기 사이에, 루카 복음서 안에서 되울린 것이든 아니면 요한 복음서에서 부풀린 것이든,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2,11)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낸다. 우리는 이 표현에서 예수께서 펼치신 활동(이 경우에는 놀라운 활동)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징’이라는 개냄을 만나게 된다. ‘표징’이라는 개념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혼인 잔치를 벌인다는 사실 자체는 계약에 대한 언급이다. ‘갈릴래아 카나’(나타나엘의 고향)라는 선택된 장소는 메시아 시대의 ‘출현’(‘갈릴’)에 대한 언급이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이 표현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신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하겠지만, 그 신분은 당신의 신성과도 연관되어 있다(참조. 1,14). 제자들은 그 표징(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


이 이야기의 풍부한 신학적 의미 

앞에서 우리는 중요한 일련의 신학적 측면을 지적했다. 여러 요소를 정돈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할 수 있다.

- ‘예수님’이 주인공이시다. 예수께 당신 어머니가 사정을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 ‘때’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렇게 카나와 칼바리아 사이에 관계가 설정된다. 예수께서는 물독들에다 물을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그 물을 퍼다 과방자에게 자져다 주라고 명하신다. 포도주로 변한 물은 메시아 시대의 잔치를 상기시킨다. 유다인들의 정결례가 이제 새로운 계약(혼인 잔치)으로 바뀐다. 이 기적은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어떻게 당신 영광을 드러내 보이시는지를 보여준다.

-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차적인 자리, 예수께 종속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자리도 기본적인 자리다. 마리아는 초대받은 첫 사람으로 나온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없구나.’라는 말로 개입한다. 마리아는 ‘때’에 관한 예수님의 신비스런 답변을 듣는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더러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이른다.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지적한 대로, 계약의 양식(樣式)을 상기시킨다. 이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계약의 경륜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돋보이게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칼바리아에서 당신 ‘때’를 나눌 것이다(19,25-27).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신하는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예수께 전구한다.

-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 기적의 증인이 된다. 예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다져진다.

-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신랑, 과방장, 일꾼들)은 상대적이나마 메시아와 관련된 역할(신부)을 담당한다. 기적을 목격하고(과방장) 기적을 증거한다.

- 선물로 받은 포도주와 성체성사의 피 사이의 관계는 ‘때’에 관한 언급으로 입증된다. 그러나 암시적으로만 입증된다.

- 이 이야기에서 결혼제도와 가지는 관계는 함축적으로만 들어 있다. 혼인 잔치 자체가 계약을 암시한다(상징으로서).


이 이야기의 역사적 핵심

이 기적 이야기가 넷째 복음서에만 나오는 사실을 자유주의 학파는 이 이야기가 상징적이거나 심지어 신화적인 이야기(그리스 술의 신 디오니시오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기본 특징은 네 복음서들에 나오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와 같은 다른 기적 이야기들의 특징과 다르다.

구약성경에 대한 언급 그리고 메시아가 온다는 증표로 본 ‘넘치는 포도주’에 대한 언급은 우리가 성경의 세계 및 유다교 세계 속에 들어 서 있음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공관복음서들에 나오는 새로운 포도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마태 9,14-17; 마르 2,18-22)을 각색한 것으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더러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새 포도주는 새 술 부대에 넣으라고 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각색한 것으로 알아듣는다. 한편, 루카 5,33-39에서는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에다 우리가 위에서 설명한 묵은 포도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덧붙인다. 그렇지만 만일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이 요한 복음서 저자가 이용한 기록물(기적에 관한 자료)에서 열거하는 일련의 여러 기적 가운데 첫 번째 것이라면, 이 이야기가 상당히 오래 되었고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표징’으로 나와 있다. 다시 말해서 깊은 의미를 가진 실제 사건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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