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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학 입문4: 세상의 전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3 조회수2,591 추천수1

세상의 전례 (전례학 입문 4)

 

 

전례는 연극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어떤 신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신부님, 왜 전례는 이렇게 재미가 없나요? 전례를 재미있게 꾸밀 수는 없나요?” 또 어떤 청년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젊은 전례, 열린 전례를 집전하기 위해서 우리 청년 모임에서는 청년들의 관심사로 말씀의 전례를 온통 꾸미고 중요 부분을 모두 청년의 구미에 맞게 바꿔서 미사를 드렸는데 참 좋았어요.” 이를테면 전례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전례를 드라마화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라고 하여 무조건적 재미만 추구하는 안방극장 연속극만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 야외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른 바 의식 있는 연극도 하나의 드라마이니까... 

 

아주 오래 전에 실험극이라는 형식의 연극을 하나 본적이 있다. 단순히 배우들만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도 그 공연에 참여하는 형식의 연극이었다. 아마 어떤 관객은 열심히, 어떤 관객은 객쩍은 마음으로 그 공연에 참석했을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하나. “전례도 그런 연극처럼 될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이다.

 

전례는 드라마나 쇼가 아니다. 전례는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들 전례를 성직자들이 행하는 것을 평신도들이 구경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전례는 그 안에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그 하느님은 어느 누구라도 국외자로 취급하지 않으신다. 한없이 자비로우시고 언제나 공평하신 분이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성직자든 평신도든 아무도 구별하지 않으신다. 전례 안에서는 주연도 조연도 없고 관중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만약 전례가 재미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자신이 관객의 입장에서 전례를 바라보기 때문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목숨을 바치며 사랑하신 그 사랑이 전례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임을 깨닫기만 하면 전례가 어찌 재미가 없느니, 그래서 열린 전례, 젊은 특수 전례로 바꾸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전례는 하느님의 사랑 잔치이다. 그 잔치에는 구경꾼이 없다. 우리가 전례에서 잔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즉시 생각해보자. “사랑이신 하느님 지금 그대 곁에 계심을 느끼고 있는가? 그대는 그 사랑에 전염되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을 삶에서 일구어내자. 그러면 전례는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니며 우리는 주인공을 바라보고 구경만 해야하는 객석의 관중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전례

 

우리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전례는 가톨릭교회의 전례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로마전례라고도 서방전례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면 로마 전례 이외에 다른 전례는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로마 전례 이외에도 현재까지 많은 종류의 전례들이 전승되고 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자.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유대인 거주지역(Diaspora)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할 때부터 고향인 팔레스티나를 떠나 다른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특히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실패했던 기원70년과 130년 이후에는 강제로 해산되어 전세계를 떠돌게 된다. 이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된 그리스도교가 점차 바오로와 같은 사도들의 노력으로 이방인들에게도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교와 로마에 의한 이중의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힘들고 긴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수스 황제(밀라노 칙령 313년)에 의해서 신앙의 자유를 얻게된 교회는 이제 더욱 열심히 복음선포에 힘을 쏟게 되고 결국 391년에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에 이른다. 특히 국교가 된 후로는 급속하게 로마전역으로 전파되어 모든 로마 점령지역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교를 통한 로마의 정치적 이념적 통일로 초기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딛고 순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정치적으로 분열된 로마는 둘로 쪼개지게 된다.(395년) 그래서 천년왕국처럼 튼튼해보였던 로마도 동방, 서방제국으로 분열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공인을 받고 뿌리를 내리던 이 시기에 역시 전례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의 영토가 광활했고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발달해 있지 않았으므로 통치하기도 매우 어려웠겠지만 전례나 신학을 통일시키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커다란 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전례가 발전하게 되었고 따라서 당시에는 여러 가지 전례가 각각 그 아름다움과 특성을 간직한 채 보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나눠지게 되고 따라서 동로마제국 영토 안에서 형성된 전례를 동방전례, 서로마 제국 안에서 형성된 전례를 서방전례라고 부르게 된다.

 

(1) 서방전례

 

둘로 분열된 서로마 제국 안에서 형성된 전례를 우리는 서방전례라고 부른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남하에 의해 476년에 최후를 맞게 된다. 제국이 멸망을 하자 여러 부족들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었고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라틴족 이외의 게르만 민족과 서 고트족등에 의해서 서로마 제국의 영토는 분할된다. 이러한 지역별 권력 난립시대는 7세기를 전후하여 프랑코 왕국이 서유럽의 패권을 차지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서로마제국 전반에 급속하게 전파되었고 교회들을 바탕으로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권위가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중세 초기까지는 서로마 제국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로마 전례, 이탈리아전례, 밀라노 전례, 스페인 전례, 갈리아 전례, 켈트(아일랜드)전례 등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그레고리오1세 590-604 이후부터 중세 전성기인 12-13세기에 시행된 로마 교황의 중앙집권적인 제도와 전례정비 이후 모든 전례가 통합된 로마 전례화 되었으며 현재 밀라노 전례만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 동방전례

 

395년 분열되어 따로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정한 동로마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제국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인 통일을 유지해 나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특히 교회도 콘스탄티노플 보다는 더 역사가 깊고 오래된 도시인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산시켜 나갔다. 또한 동로마제국에 속해 있었으므로 베드로의 후계자였던 로마의 주교(교황)의 영향력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전례도 매우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동방전례는 강제적인 통폐합을 겪지 않고 보존되었으며 현재까지 다양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전례, 즉 동로마제국의 영토에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온 교회의 전례를 동방전례라고 부른다. 이 동방 전례는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시리아 지역에서 발전해온 시리아 전례가 있는데 이는 다시 동부 시리아 전례와 서부 시리아 전례로 나뉜다. 동부 시리아 전례로는 앗시리아 칼데아 전례, 시리아 말라바르 전례 등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서부 시리아 전례로는 야고비트 전례, 마로니트 전례, 비잔틴 전례, 아르메니아 전례 등이 전해온다. 북아프리카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회가 번성하였는데 이슬람 국가가 발흥함으로써 현재는 이집트의 콥트 전례와 에티오피아 전례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전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리가 매일 참여하는 로마 전례만이 유일한 전례는 아니다. 로마 전례는 서방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인 전례일 뿐이며 동방 교회에는 서방전례와 동등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전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서방교회가 전세계로 널리 퍼져나간데 비해서 동방교회가 이슬람의 발흥 등의 물리적인 이유로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례만큼은 동등한 사도적인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다양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게 된 전례는 역사 안에서 살아 숨쉬어 온 유산이며 지금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 삶으로 승화되어야할 과제이다. 전례를 단순한 예식, 더 나아가서 성직자만이 참여하는 쇼나 드라마로 인식해서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례를 지켜낸 것은 갖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한 교회 모두의 힘인 것이며 따라서 전례의 주인공은 교회 구성원 모두인 것이다.

 

[이완희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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