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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연중 제19주일 본문+해설+묵상>-김수복
작성자박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04 조회수1,802 추천수0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8,6-9

6 해방의 날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1과 12.18-19.20과 22(◎ 12ㄴ)

◎ 주님께서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은 행복하여라.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리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께서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시도다.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하시고,

굶주릴 때 그들을 살리시기 위함이로다. ◎

○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기다리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 우리의 방패시로다.

주님, 저희가 주님께 바라는 그대로,

저희 위에 주님의 자애를 베푸소서. ◎ 

 

제2독서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이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9 또는 11,1-2.8-12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24,42ㄱ.44

◎ 알렐루야.

○ 너희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2-48 또는 12,35-40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147,12.14

예루살렘아, 주님을 기려라.

주님께서는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시도다. 

 

해설과 묵상


제1독서(지혜 18,6-9) 해설

<지혜서의 저자처럼 우리도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집트에서 지내는 파스카: 지혜서의 저자는 자기 선조들이 예전에 박해받던 곳 이집트에 산다. 그러나 거기에서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파스카 전야제를 지낸다. 그는 자기 집에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 먹으려고 식탁에 둘러앉아서 자기가 계약의 백성에 속해 있음을 확신하면서 기쁨에 넘치고, 주님을 찬양하는 알렐루야 노래를 되풀이하고,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기념한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에 참여하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과 더불어 온갖 기쁨과 슬픔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하느님의 임무는 부르심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을 긴밀하게 묶어 주고 연결시켜 주는 친교의 끈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계속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와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시는 데 쓰이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의 친교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칠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러한 자기 임무를 다하는 올바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거짓과 불의를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은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인다.


화답송(시편 33[32],1과 12.18-19.20과 22[◎ 12ㄴ])

<주님께서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은 행복하여라>


이 시편은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행하신 놀라운 업적들을 찬양한다. 시편작가는 하느님께로부터 보호와 총애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초대한다.

이 시편 마지막 부분(12-22절)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소망에 응답하는 자애로우신 섭리를 강조한다. 그분의 눈길이 그들 뒤를 놓치지 않고, 그분의 은총이 그들을 뒤따른다.

올바른 사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느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 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눈길을 한시도 떼지 않으시고 굶주림과 병고와 죽음에서 그들을 구해 내실 것이다.


제2독서(히브 11,1-2.8-19 또는 히브 11,1-2.8-12) 해설

<올바른 사람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나아간다>


아브라함: 인류 역사와 각 사람의 인생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여행이다. 사람은 자기 고향과 자기 집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게 마련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참된 고향인 당신 집으로 인도하려 하신다. 하느님 아버지만을 단단히 믿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묵묵히 따라가노라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설계되고 건축된 영원한 고향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만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자기 고향을 당장 떠나 불안하고도 죽을지도 모르는 나그네 길을 떠나고, 이미 늙어 버린 아내 사라이에게서 자식을 보게 되고, 모진 갈등과 고뇌를 이겨 내면서 그 귀중한 아들 이사악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설정한 목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목표를 지향해야만 하느님께서 구상하신 ‘친교를 나누는 인류공동체’ 곧 하늘에 있는 본 고향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향을 향해가는 공동체: 아브라함처럼 하느님만을 굳게 믿고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유대로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적 공동체를 이룬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연대하고 결합해서 이상적인 인간사회를 건설한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만을 믿고 자기 자신의 욕심만을 차리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바로잡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복음(루카 12,32-48 또는 루카 12,35-40) 해설

<예수께서는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으라고 초대하신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자기 자신을 열어놓기: 종의 비유와 강도의 비유는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생생하고 각별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을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재물을 쌓으려 애쓰지 말고, 가지고 있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그리하여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라고 간곡하게 초대하신다. 그래야만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큼 다가설 것이다. 재물을 서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주여 어서 오소서.’ 하는 간절한 바램을 실천으로 나타내고 입증하는 것이다.

준비하고 있으라: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에도 인류 역사 현실에 대고 당신의 격정적인 말씀을 되풀이하고 계신다. 당신께서 언제 다시 오시어 들이닥칠지 모르니, 당신을 맞아들일 준비를 착실히 하라고 재촉하신다. 약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때리고 빼앗고 못살게 굴면서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다가 도둑처럼 들이닥치는 당신을 맞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신다. 재물을 땅 위에 쌓지 말고, 재물을 따뜻하게 골고루 나누면서 ‘친밀한 인간관계’와 ‘친교의 기쁨이 넘치는 인간사회’ 건설에 몸 바침으로써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라고 당부하신다. 그 ‘친밀함’과 ‘친교’야말로 영원한 가치로서, 사람의 상상과 소망을 초월한 ‘물질적인 것을 포함한 영적인 영원한 풍요로움과 행복’으로 꽃피고 열매 맺을 씨앗이다.


묵상

<하느님 나라가 임하소서>


오늘 복음은 위안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32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예수께서 당신 설교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신 주제 가운데 하나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들 사이에 있고”, “너희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서 자라고 있다.”고 가르치셨다. 이제 그 선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은혜로이 당신 나라를 너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너희에게 이루어진 바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제 우리가 다소곳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위대한 은총에 따라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 신비스런 성격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34절)고 예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신다. 하느님은 당신 나라를 세우는 일을 우리 존재와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일로 삼도록 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생긴다. 만일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지상 재물과 권세와 명성이라면, 당연히 우리 관심과 노력을 그것을 얻기 위해 쏟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얻었다고 해서 결코 우리는 진정으로 만족할 수가 없고 갈증과 허탈감만 더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귀중하고 우선적인 가치를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에 둘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하느님 사랑에 보답하기로 온 마음과 온 힘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사랑은 하느님의 것이며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당신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진정한 사랑을 체험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우리 인생 목적으로 삼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영역과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우리의 사람사랑도 하느님의 사람사랑을 이어받는 사랑이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사랑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사람들 사이를 맺어 준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랑이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이 될 때,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사로잡고 그 사랑이 인간사회에 속속들이 스며들 때,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되어 나타나고 그리스도께서 장엄하게 재림하실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기>


하느님 나라에 자기 자신을 열어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 모든 소망을 그리스도께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종의 비유와 도둑의 비유가 답변을 준다. 그 비유는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 옆에 지나가고, 우리 생명을 거두어가고, 마지막에 재림하실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되겠지만, 동시에 우리 사이에 이미 와 있고 힘차게 자라고 있다. 마지막 때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은 이미 종말론적인 기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몸 바쳐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일회적인 생애는 다소곳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합당하게 맞이하는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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