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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동서양 장례 관습의 차이점 비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23 조회수8,032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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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장례 관습의 차이점 비교

 

 

1. 들머리에

 

문화인류학계에서는 인류가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매장하기 시작한 것을 대략 30만 년 전쯤으로 보고 있고, 고고학계에서는 인류가 예를 갖추어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라는 관습을 가지게 된 것을 구석기 중기였던 7-8만 년 전 쯤으로 보고 있다. 유럽 대륙에 나타난 구인류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원시 종교적인 의식으로 시신을 붉게 칠하여 매장하는 관습이 최초로 행해졌다는 설이 유력하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자각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종교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그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에 대한 경외심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이에 따라 시신에 대하여 공포와 함께 생시에 대한 애착, 존경 또는 숭앙하는 마음이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보존하거나 이를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장묘 관습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신을 보존 또는 환원하는 방법은 각자 주어진 기후와 토질 등 자연 지리적인 환경과 문화와 종교적인 습속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온 시신을 땅에 묻는 토장(매장) 외에, 그리스도교의 신구약성서를 보면 야곱의 조상과 예수님을 동굴 속에 모신 것을 볼 수 있고, 고대 인도 불전(佛典)에는 장법으로 토장(土葬), 화장(火葬), 수장(水葬), 조장(鳥葬) 4종류가 있다고 기록되고 있다.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을 기초로 원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사용된 장법(葬法)을 보면, 실로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장법이 발견되고 있는데 큰 범위로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천차만별이며 다양한 장묘 방식을 딱히 동서양 어느 쪽의 장법(葬法)이라고 구분하여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나 우선 이러한 장례 방식이 가진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현대 서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장묘 방식과 동양에서 사용되는 장묘 방식의 유래와 특징을 구분하여 보고, 동서양의 장례 풍습의 차이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는(던) 장법의 특징과 유래

 

1) 매장(埋葬)

 

유사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한 전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장법으로 시신 또는 시신을 넣은 관이 직접 땅에 닿도록 매장해 시신이 땅속 미생물과 지열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환원되도록 하는 장법이다. 과거에는 비용이 다소 적게 들어가는 장법이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매장지를 구하기 어려워져 비용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최근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순환 매장제(시한부 매장제)를 시행하여 묘지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2) 화장(火葬)

 

시신을 고온의 불로 연소시킴으로써 소멸시키거나 소량화하여 인위적으로 자연계에 환원되기 쉽도록 하는 장법으로 인도와 같은 고온다습한 자연 환경에서 유래되어 현재 가까운 화장 대국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 영국,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서양 각 나라에서 종교적인 이유 외에 위생적, 사회적,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화장한 후에는 유골을 매장하거나 납골당에 안치하는 방법 외에 강과 산 등에 뿌리는 산골(g散骨) 방식이 있다.

 

3) 수장(水葬)

 

얼마전 고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이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 해군 함정에서 시신을 바다에 수장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런 수장의 풍습은 방글라데시 등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데 보통 장기 항해 중 사람이 죽었을 경우 행해졌는데 선상에서 의식을 치른 후 시신을 강이나 바다에 던져 자연계로 돌려보내는 장법이다.

 

4) 조장(鳥葬)

 

파키스탄이나 티벳에서는 아직도 조장이 행해지고 있는데 특히 티벳의 경우 라마 불교인 '봉' 교도가 행하는 방법이 많이 알려져 있다. 시신을 산 위로 옮기고 승려가 경전을 읊으면서 시체를 해체하고 내장을 꺼내 장미를 뿌리고 사지도 잘라낸 뒤에 이를 독수리 등에게 먹이는 장법이다. 이들에게는 죽은 자의 혼이 새를 통해 하늘로 보내진다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다고 한다.

 

5) 풍장(風葬)

 

시체를 그대로 또는 관에 넣거나 짚 등으로 말아 야산, 동굴이나 낭떠러지에 방치해 동물에게 먹이거나 생물이 사체를 분해하도록 하는 자연의 풍화 작용을 기대하는 장법이다. 나뭇가지에 시체를 놓는 수상장(樹上葬), 짚으로 마는 초장(草葬),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는 수장(獸葬), 지하 동굴에 안치하는 동굴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해의 섬 지방에서 섶으로 초분을 설치하였다가 육탈(肉脫, 遺脫)이 된 후 매장하는 장법도 풍장이라고 부른다.

 

6) 유기장(遺棄葬)

 

재력이 없는 서민이 주로 행한 방법으로, 시체를 야산 또는 강변 등에 방치하여 돌보지 않는 풍장의 일종이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 한양성 시구문 밖에 밤에 몰래 어린아이나 상민들의 시신을 버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최근까지도 아이들이 죽으면 뒷산 으슥한 곳에 돌로 간단하게 덮어 두는 경우도 아주 흔했다.

 

7) 미이라장

 

고대 이집트나 잉카 제국의 미이라가 유명하고 현재까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고대 이집트인들의 공동 묘지에서 흔히 발굴되고 있다. 시신에서 뇌와 내장 등 부패되기 쉬운 부분을 꺼낸 후 약제를 이용해 방부 처리를 하고 나서 도포로 말아 관속에 넣어 보존하게 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음으로 일시적으로 신체를 떠난 영혼이 다시 신체로 돌아와 부활할 것으로 믿고 있어 시체를 보존하려고 한 장법이다. 약간 다른 방법이기는 하지만 구소련의 레닌,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의 시신을 보존하는 방법도 현대판 미이라라고 말할 수 있다.

 

8) 엠바밍(Embalming)장

 

미국 영화를 보면 장례식을 치를 때 관 뚜껑을 열어 놓고 고인에게 헌화를 하거나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장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미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장법으로 방부 처리를 위해 시체에서 혈액을 빼내고 포르말린 등 방부액을 주입한다. 얼굴에 화장(化粧)을 시키고 사고 등으로 시신이 훼손된 경우는 조형 수술로 복원하여 입관한 후 시신을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한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비교적 오랫동안 보존하려고 한 근대적인 보존장이다. 미국 남북전쟁 때 전사자의 시신을 멀리 떨어진 유족들에게 온전하게 전하기 위하여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최근 모셜리움이라는 실내 묘소가 성행하면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장법이다.

 

9) 지하 동굴장(地下洞穴葬)

 

구약성서 창세기 2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아들인 이사악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는 것을 비롯하여 신약성서 4복음 모두에 나오는 예수님을 모신 동굴 이야기까지 많은 이스라엘의 성인들을 동굴에 장사지낸 것이 나온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굴장은 고대 로마의 유적인 카타콤이라고도 불리는 지하 동굴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탄압 때문에 지하 동굴로 숨어든 그리스도교인이 순교자나 성자 또는 신도의 시체를 동굴 안의 벽면에 매장시킨 것이다. 또 근대에 와서 파리에는 시내에 있던 많은 묘지들을 정리하면서 연고자가 없는 600만 구의 유골을 채석 광산 동굴에 안치해 놓고 있다. 위 두 곳은 관광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광이나 성지 순례를 가면 많이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 그곳"이라고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10) 세골장(洗骨葬)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시마쇼(島しょ)부와 오키나와(沖繩)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장법으로 시체를 묘실(매장) 등에 넣어 두었다가 수년이 지나 육탈된 후 물로 씻어 내고 깨끗하게 한 뼈를 다시 매장하는 장법으로 풍장의 한 종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장법이 우리나라의 서해안 섬 지방에서 행하여지고 있는데 이를 풍장으로 포함하여 부르기도 한다.

 

11) 선장(船葬)

 

비교적 오래된 것이지만 '바이킹'이라는 영화를 기억해 보면 쉽게 떠오르는 장법으로(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의 시신을 실은 배가 바다 멀리 떠나갔을 때 불화살을 날려 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 바로 이것이 북유럽 바이킹족이 행했던 장법으로 유명하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섬들에서도 행하여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12) 실내 안치장(室內安置葬)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억해 보면 줄리엣이 비약을 먹고 가사 상태였을 때 누워 있던 장소 - 이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두 자살한다 - 가 바로 줄리엣 가문의 가족 실내 묘소였다. 유럽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통상 왕족과 귀족이나 성직자 등의 시체를 약제 또는 다른 것으로 방부 처리를 한 다음 석관이나 금속관에 넣고 그것을 교회나 궁전의 실내 복도 또는 지하실에 안치하는 것이 실내 안치장이다. 시체를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려는 방법으로 웨스트민스트 사원과 성 베드로 성당 등의 경우라 할 수 있는데 건장(乾葬)으로 미이라장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레사 수녀님을 수녀원의 실내에 안장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실외에다 돌이나 콘크리트로 된 구조물을 설치하여 그 속에다 관을 안치하는 것을 모셜리움(靈廟, Mausoleum)이라는 이름을 붙여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을 프랑스에서는 앙프(Enfeux)라고 부른다.

 

13) 기타

 

20세기 후반에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 생겨난 장법이 우주장, 냉동장이며 앞으로도 문명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장법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설명한 장법은 서로 약간씩 중복되어 있는 것도 있고, 엄밀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인종, 민족, 자연 환경이나 생활 수준의 차이에 따라 장법은 오랜 기간 각양각색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선장과 같이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쓰지 않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화장과 같이 점점 사용이 늘고 있는 것도 있다.

 

 

3. 동서양의 장묘 방법은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외형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만 그 나라 사람들의 바탕에 깔린 관념과 오랜 동안 정착된 생활 관습에 따라 외형과 절차 등에서 일부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며, 또 같은 나라에서도 각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황하게 여러 장법을 비교하여 볼 수는 없으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화장과 매장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1) 화장

 

동서양의 화장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서양에서의 화장이 동적이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한 데 비하여 동양에서는 사뭇 정적이고 관념적이다.

 

(1) 서양의 화장

 

서양에서 화장의 관습은 BC 10세기경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서구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의 시체를 전쟁터에서 화장하고 그 재를 모아서 장례식과 매장을 위해서 고향으로 보냈다. 일리아드를 보면 위대한 영웅일수록 화장의 규모는 컸다. 아킬레스는 그의 친구 패트로클러스를 위해 화장을 위한 장작더미를 100피트(30미터)높이로 준비했고 화장 후 뼈들을 기름과 와인으로 닦아 금으로 된 유골 상자에 넣어 고향으로 보냈다. 그래서 화장은 용맹함과 남성성, 애국심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군사적 영웅을 화장할 때에 그리스의 화장 관습에 따라 화장에 쓰일 장작더미를 잎사귀로 덮었고, 앞면에는 애도의 상징인 사이프러스 가지를 놓아 두었으며, 불꽃이 타오르면 군인들은 전쟁의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불이 꺼진 후에는 유골을 와인으로 씻어서 유골 단지에 넣었다. 그래서 로마에서 화장은 지위의 상징이 되었으며 유골 단지 저장소(벽감, 콜롬바리움)를 짓고 그곳에 안치하였다.

 

그런데 BC 1세기 전후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화장 의식이 사라졌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시신을 화장하게 되면 육체의 부활시 육체와 영혼의 재결합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화장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화장에 많은 양의 목재들이 쓰였기 때문에 목재의 부족이 심각해져서 화장이 중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어느 설이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후 서부 유럽에서 19세기까지 화장은 거의 행해지지 않았으나 1656년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6만여 명의 사망자들은 일주일 이내에 나폴리에서 불태워졌는데 콜레라와 흑사병과 같은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유행하는 등 긴급한 상황에서 화장은 계속해서 행하여졌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서구에서는 의사와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화장의 합리성과 위생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게 된다. 도시 내 성당이나 교회 묘지들이 무분별하게 늘어나 전염병의 창궐과 여러 사회 문제가 대두되면서 묘지의 정비와 함께 화장을 장려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근대 산업화된 영국이 유럽 화장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하였고 독일, 스위스와 북구 등지로 전파되었는데 이들 나라들은 근래 화장률이 70%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서양의 화장은 시신의 감량화로 이동을 편리하게 한다는 사뭇 동적(動的)이고 위생적·합리적인 면을 고려하여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

 

(2) 동양의 화장

 

동양에서 화장은 현재까지 문헌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도의 힌두교에 뿌리를 둔 불교의 전래와 함께 화장도 전파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물론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중국이나 한반도의 지석묘(고인돌)에서 화장한 흔적이 일부 발견되기도 하였지만 화장이 보편화된 것은 불교의 장법으로 퍼진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다.

 

동양에서 화장의 유래가 불교와 맥을 같이하고 있어 화장 방식이나 화장에 대한 관념이 사뭇 불교적이라는 점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해탈에 이르기 위해 육신을 깨끗한 불로 태워 버린다. 동양에서 화장이 발생한 인도에서는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올려 놓고 화장한 다음 재를 강물에 뿌리는 것으로 장례가 모두 끝난다. 곧 신의 어머니 강인 갠지스 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세계적인 화장 대국 일본의 화장에 대한 유래와 관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7세기 승려 소도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불교를 설법하고 열반에 들면서 "육신을 화장하라."라는 유언을 제자들에게 남겨 이를 시행한 것이 시초라고 일본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후 황실과 귀족들에게 화장이 전해졌고 이때부터 현재까지 사원을 중심으로 화장이 성행하였다. 한때 사원의 주지가 화장 집례자로서 벌어들이는 것이 사찰의 주수입원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세 전국 시대 혼란기에는 화장 경비가 없어 시신을 함부로 들판에 버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장을 하는 데 꽤 많은 돈이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막부가 천하 통일을 한 다음 유학이 장려되면서 화장이 일시적으로 쇠퇴하기도 하고 19세기 말 법률로 화장을 금지하기도 하였지만 이미 뿌리내린 화장을 막을 수는 없었고, 오히려 화장에 유교적인 관념이 더해진 계기로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근대 일본인들은 화장이 '성스러운 불로 육신을 태워 깨끗한 유골을 얻어 죽은 자의 영을 공양(제사)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불교적인 관념에다 유교적인 제사가 가미된 의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화장은 정적인 유교와 무소유의 관념적인 불교가 결합된 장례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정신적인 관념이나 과학적인 합리성보다 매장으로 묘지가 증가함에 따라 국토가 훼손되고 장례 비용이 많이 들고 성묘 차량으로 혼잡해짐에 따른 개인과 사회적인 비용 부담 등 각종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화장을 장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서양의 장묘 방식의 차이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러한 장묘 방식의 차이는 현대 동서양의 화장장과 화장로 기계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동양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장로는 대차식이라고 하여 관을 대차 위에 올려 놓고 화장을 하면 화장된 시신이 깨끗하게 원형대로 유족들에게 돌려진다. 또한 화장장은 고인을 마지막 보내는 장소로서 신성하게 자리매김하여 유족을 위한 편의 시설을 갖춘 품위 있는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반면 서구의 화장로는 시신을 원형대로 보존하기 어렵고, 화장장은 단순히 시신을 태우는 공간에 지나지 않아 어떤 종류의 편의 시설이나 존엄성 배려를 위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2) 매장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 사망자의 몸을 보존하거나 분해하는 것이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보편적인 정신적 의식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사망한 사람을 매장하는 의식은 인류 문명의 동이 터 올 때부터 행해졌고 지금도 어느 곳에서든 일어나고 있다.

 

(1) 서양

 

서양에서는 시신을 보존한다는 의식이 좀 더 강해 시신을 매장하기보다는 땅 속에 수장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곧 시신을 땅속이나 건물 등 어떤 곳에 안치하더라도 시신이 직접 흙에 닿는 경우는 흔치 않고 관속에 고이 모신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의식은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삶의 종말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부터 기원한다. 인간이 죽어서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된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지만 사람이 죽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살아 남는다는 믿음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근대 서구에서는 묘지의 무분별한 확장을 금지하고 묘지의 재사용, 곧 최하 5년에서 최장 60년 내외의 기한 동안 시한부로 매장해 두었다가 기간이 종료되면 납골당에 합동 안치하거나 화장 후 기념할 만한 곳에 뿌리며 그 땅은 후손들이 다시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예외적으로 국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거나 문화 예술적으로 공헌한 인사들의 묘는 계속해서 보존한다).

 

그런데 서구의 묘지들은 생활 공간 가까운 곳에 둔다는 점이 동양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교회 묘지나 집에 가까운 집단 묘지에 모셔 두고 언제라도 그리우면 자주 찾아가서 사랑을 나누고 추모한다는 점이다. 곧 사후에도 남아 있는 사람의 생활 속에 영원히 함께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동양

 

동양에서는 시신을 흙으로 돌려보낸다는 관념이 역사 이래 많은 매장 방법의 변화를 거치면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흙으로 돌아간 시신이 토지의 기(氣)와 작용하여 후손들에게 복을 주거나 화를 미치기도 한다는 그릇된 풍수 도참 사상까지 성행하고 있다. 조상을 모실 명당 묏자리를 찾아 많은 돈을 주고 지관을 사서 산하를 누비는 사회 지도층 인사까지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양의 무덤(특히 한국)은 기피의 대상이다. 명당을 찾다 보니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아 쉽게 찾아갈 수가 없다. 사랑하던 가족을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먼 곳에 홀로 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4.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화장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경제적, 종교적 측면 등 어떠한 면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화장이 천대받을 만한 어떤 이유도 없다. 오히려 보건 위생적인 측면에서 보면 깨끗하고 위생적인 장법이며, 경제적으로 보면 적은 비용으로 고인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으며, 사후에 벌초 등으로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가까운 교회나 절의 '추모의 집'에 모셔 두면 언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진정한 가족 사랑을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묘지, 화장, 납골 시설은 혐오 시설이 아니고 현대 도시에서는 필수적인 생활 시설이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같이 이용해야 할 성스러운 곳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시설을 혐오 시설로 인식하여 우리 지역에는 절대 아니 된다는 집단 행동에 나서는 바람에 시설을 설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장묘 시설의 음산한 분위기를 없애고 고급화, 첨단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묘지와 납골당 시설을 초현대식으로 개선하고 이름마저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생활 편익 시설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혐오 시설로 여기는 장묘 시설에 대해 서양 사람들은 생활 공간 속에 자리한, 늘 찾아보고 가꾸며 가족끼리 한나절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꾸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장례에 대한 관념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대가족이 한 집에서 함께 살던 농경 사회와는 달리 현대 사회는 산업화로 도시화되었고 한두 명의 자녀를 둔 핵가족이 가족 단위가 되었고 주거 형태도 아파트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병원 장례식장이 성업을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장례식장들이 어떠한가? 고급 사교장으로 변모하지는 않았는가? 어느 장례식장을 가도 진정으로 슬퍼하고 애도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장례를 치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례식장 사람들에게 장례를 맡기고 유가족들은 구경만 하는 결과까지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호사스러운 묘지에 모셔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잘못된 인식, 이제는 분명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들인 장례보다 진심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는 정성이 담긴 그런 장례를 치르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효도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올바른 삶을 산 사람은 이름 석자만을 세상에 남겨 두고, 효자는 가슴 속에 조용히 효심을 묻는다. 그러나 불효자는 돈으로 호화 무덤을 만든다." 언젠가 장묘 문화 개선 시민 운동을 하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필자에게 던져 준 말이다.

 

[사목, 2001년 11월호, 박태호(서울역사박물관 총무과 시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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