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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든 것은 지나가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14 조회수2,366 추천수34 반대(0) 신고

10월 15일 수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루가 11장 42-46절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나>

 

짐을 싸들고 수도원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그 날, 제 각오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오직 하느님만을 추구하는 성실한 구도자로서의 삶에 충실케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수도원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열심히 기도 잘하는 방법을 배워 감미로운 관상기도 생활에도 맛들이고, 깊이 있는 묵상기도를 바탕으로 온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겠노라고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다짐을 했었습니다. 한평생 고고한 학과도 같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시라고 열심히 기도도 했지요.

 

그런데 웬걸, 하루 이틀, 한달, 두 달이 지나고, 일년 이년, 십 년 이십 년이 다 지나가지만 감미로운 하느님 체험이라든지 깊이 있는 기도체험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합니다.

 

타성에 젖은 기도생활에서 탈피해보려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무의미합니다. 물에 물 탄 듯한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은 전혀 진보의 기색이 없습니다. 누구는 제6궁방이니 제7궁방이니 하는데, 아직도 제1궁방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이란 것이 때로 너무 지루하고 험한 것이어서 좌절에 좌절만을 거듭합니다.

 

영적인 삶이나 기도체험과는 전혀 동떨어진 제 자신의 모습이 하도 서글퍼서 마음이 아파질 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시는 성녀가 한 분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입니다.

 

데레사가 누구입니까? 신비가 중의 신비가, 관상기도의 전문가, 하느님 체험의 제1인자가 아닙니까?  

 

그런 데레사 역시 20년 이상의 오랜 세월동안 방황과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자서전에서 데레사는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흔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나는 세속을 찾아 헤매 다녔습니다. 세속적인 향락에 자신을 던질 때는 하느님께 빚진 것에 대한 기억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하느님 일에 종사하면 세속적인 성향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느님과 세속 사이에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가운데 끼어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그렇게 뚜렷하게 들리는데도 나는 그 소리에 따를 힘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수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데레사는 조금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삶에로의 발 돋음이 얼마나 힘겨웠던지 데레사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오, 지루하고 고통스런 삶이여! 산다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버림받아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여! 주여, 언제이옵니까? 아직 얼마나 더 계속 되려나이까?"

 

영적인 삶에는 엘리베이터를 탄 듯한 수직상승이 없습니다. 오직 한 발 한발 오르막 계단을 이용해 밟고 올라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무수한 좌절 끝에 마침내 도달한 최정상에서의 영적 생활은 데레사를 탈흔 상태까지 이르게 합니다. 탈흔 상태에서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이 얼마나 달콤했으면, 탈흔 중단 후의 슬픈 감정을 데레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탈흔에서 일상생활에로의 복귀는 낙원에서 내쫓긴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귀양살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감미로운 하느님 체험을 맛본 후에 데레사는 진정으로 죽고싶어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주 "감미로운 죽음"에 대해서 말하곤 했는데, 얼마나 죽고 싶었으면 "아직 죽을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죽겠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데레사는 영혼의 무미건조함에 대해서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최고 단계의 완전성은 내적 위로나 고상한 황홀감이나 현시, 예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합일시키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동일시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다음과 같은 데레사의 글 한 조각이 오늘 하루 우리를 살찌우는 영적 양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말며 무엇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내는 모든 것을 성취합니다.

하느님만을 차지한 사람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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