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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부님의 고향 방문기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24 조회수3,086 추천수34 반대(0) 신고

                         

                        통고의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 현철 신부님 미니 홈피(http://hompy.dreamwiz.com/hl1ye)에서 감동적으로 읽은 글 하나 함께 묵상 글로 나누고 싶어 올려드려요. 내일이 재의 수요일이네요. 은혜로운 사순 시기 맞이 하시고 주님 사랑안에서 늘 영육간에 평안하시기를 바래요. 덧붙여, 혹여 이 현철 신부님께 결례가 되드리지 않을까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자유 게시판에서 좋은 글들을 올려주시는 매우 개방적이시고 밝으신 이 현철 신부님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신데 부디 영육간에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기도로써 가브리엘 신부님과 함께 해 주시기를 작은 기도 중에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구정모 신부님 글 / 예수회, 일본 상지대 신학부 교수

       

      저는 지금 고향에서 꿈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향집 사랑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계신 부모님이 셋째 형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에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지고 굳어지시더니, 요즈음은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형편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농사일에 몸이 많이 부서지시고, 알콜 중독으로 고생해 오셨습니다. 몇 년 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사경을 헤매시기도 했습니다. 의사들도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위독한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합니다.

       

      셋째 형님은 오랫동안 자폐증으로 고생하셨고 지금도 대인공포증이 심합니다. 나이가 이제는 사십대 중반, 아직도 장가를 못 가셨습니다. 집에서는 몇 번인가 장가들이려고 노력도 하고, 또 좋은 며느릿감도 있었던 모양인데 결국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고향집에서 꿈 같은 휴가를 보낸다고 하는 것은 무슨 휴양지 같은 데서 안락한 휴식을 취한다거나, 혹은 피정을 하면서 영혼이 잠잠해지고 하느님의 영 속에서 쉰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랍니다.

       

      고향집에 오면 오히려 고독한 정신 집중과 상당량의 노동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선은 부모님 목욕시켜 드리고(어렸을 적에는 어머니께서 저를 씻겨 주셨는데,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씻겨드립니다), 밥도 하고(음식솜씨가 괜찮습니다), 청소도 하고, 부모님하고 얘기도 나눕니다. 이분들의 기억이 자꾸 희미해져 일부러 말도 시켜 보고, 옛날 일들을 회상해 보시도록 말을 거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정신이 맑고 말씀도 잘 나누시지만, 어떤 때는 말이 흐트러지고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셋째 형님하고 얘기할 때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수정 같은 그의 영혼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 버리시기에…. 내 마음이 수정 같이 되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대화가 성사되지 못합니다. 아무런 방어기제도 갖지 못하신 셋째 형님, 그는 그 대신 오랫동안의 침묵을 통해 삶의 신비를 담아오셨습니다. 저는 어떤 때, 그 침묵이 너무 무겁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기도 합니다. 형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저 두꺼운 침묵의 저편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쌓아 놓고 계실까? 저 아픔과 슬픔의 영혼 안에 얼마나 깊은 강물을 흘려보내고 계시는 것일까?

       

      오후는 산책 시간입니다. 주위는 추억과 기억으로 가득 찬 풍경, 저는 옛일들을 회고해 가면서 이미 많이 사라져 버리고 작아져 버린 삶의 흔적들을 찾아 헤매어봅니다. 땅은 늙으신 어머니의 주름살. 저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옛 거리를 한 시간 이상 걷습니다. 어머니와 시장 가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우고 나가시던 일,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전근가시는 길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일, 둘째 형님이 군에서 휴가 나오시던 초여름의 아카시아길, 친구들과 멱감으러 가던 길…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고 저는 그만 눈을 감아버립니다.

       

      고향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가족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동네 할머니들도 함께 참례하십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인사를 드리면 이분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 라고 답해 주십니다. 이분들의 응답을 들으면 이 인사가 건네주는 삶의 신비가 새삼 느껴져 옵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생각해보면 볼수록 이 말씀처럼 축복된 인사 말씀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삶, 그 기쁨과 희망, 빛과 어두움 속에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설명할 수도 없는 삶의 무게와 아픔 속에도 일상적 즐거움과 웃음 속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도 당신을 떠나보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미사를 드리면서 저는 "부모님이 병에서 회복되게 해주십시오. 아니면 적어도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리기도 하고, 셋째 형님이 결혼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청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기도가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를 또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손수 마련해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성체를 받아 모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는 수십 년간 노동을 하셔서 손마디가 아주 굵습니다. 그 손 안에 하얗고 은총 가득하신 예수님의 몸이 주어집니다. 어머니는 손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입으로 성체를 영하십니다. 입이 건조해서 물을 한 모금 마셔야 겨우 성체를 넘길 수 있는 어머니 그리고 그렇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부모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시고, 이분들과 함께하시고자 내려오시는 예수님, 아니마 크리스티(그리스도의 영), 코르푸스 크리스티(그리스도의 몸).

       

      영성체 후의 묵상 시간이 이어집니다. 고향집은 가난하고 거룩하고 고요한 베들레헴입니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삶을 견디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기쁨과 감사와 찬미로 가득 차게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고향집의 저녁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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