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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14 조회수641 추천수1 반대(0) 신고

220814. 연중 제20주일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오늘 <말씀의 전례>는 우리의 영혼을 태우는 뜨거운 불입니다.   

 

<제1독서>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대신들의 요청으로 죽음의 저수동굴에 던져져 박해받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예언자의 길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기존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고 백성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자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썩은 세상일수록 진리와 정의를 더 강하게 외면하고 박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오늘 복음과 연결됩니다.  

 

<제2독서>는 “우리가 달려야 할 길”(히브 12,2)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는”(히브 12,1) 일이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히브 12,2)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십니다. 여기서의 불은 하늘나라의 선포를 말합니다. 한편 “불”은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예레 20,9;23,29)과 엘리야 예언자의 말(집회 48,1)을, 신약에서는 세상에 대한 종말심판(마태 3,11;7,19;마르 9,48;루카 3,16)을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하시며, 열절한 마음으로 저희에게 “불”을 지피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 가슴을 뜨겁게 한 이 “불”은 성령에 의해서 타오르는 ‘말씀의 불혀’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이나 밖이나, 이 “불”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가진 기득권으로 불빛을 짓누르고 공격합니다. 불의와 거짓은 물러가기보다 오히려 “불”을 꺼버리려 온갖 술수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언자는 더더욱 박해받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루카 12,50)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물세례’로 전도활동을 시작하시어, 십자가에서 ‘피 세례’로 전도활동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새 생명(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받아야 할 이 ‘피의 세례’와 우리 안에 타올라야 할 이 ‘성령의 불’은 하나의 큰 도전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이나 딸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결코 갈 수 없는, 결코 양다리를 걸칠 수도 두 주인을 섬길 수도 없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 걸어야하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모순과 부조리, 불의와 거짓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세상과 맞서야만 하는 일이요, “불”로 어둠과 거짓을 사르고 자신을 파괴하고 분쇄시켜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분열 속에서, 빛과 어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4항)에서는 말합니다.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표지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분명,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사 9,5)일진데, 어찌하여 분열을 일으키실까? 그것은 파괴를 위한 분열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분열인 까닭입니다. 우리의 안주와 이기심과, 세상의 불의와 부정과의 분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이기심과 세상의 불의와 일치를 이룰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속셈과 생각을 갈라냅니다.”(히브 4,12)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의 불’은 우리를 갈라놓고 분열시킵니다. 오늘도 세례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분열시킵니다. 그것은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키기 위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흔히 분열을 회피하려 하지만, 분열은 회피하고 덮어버려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입니다. 바로 그 분열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분열이 없는 듯 보여도, 사실은 거짓된 평화 속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분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열 안에서 빛과 어둠을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분열은 어둠으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빛으로부터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카오스 위에 머무르는 영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그렇습니다. 우리는 카오스 속에서 빛과 어둠을 보아야 합니다. 분열이 없는 것이 평화인 것이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진 것이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이신 당신께서는 오늘도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십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의 선물더미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주님! 이 칼의 불꽃이 우리 안에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주님! 당신은 제게 사랑의 불을 지르십니다. 제 속의 어둠을 태워 새로운 살이 돋게 하시고, 이기심을 태우고 자비가 돋게 하소서 무관심을 태우고 사랑이 돋게 하시고, 이제는 제게서 사랑의 분열을 일으키소서. 제가 중병에 걸린 까닭입니다. 제 살을 가르고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소서. 제 안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 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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