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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 부활 제6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23 조회수1,261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2

바오로는 2고린 11.25에서 자신이 세 번 매질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1데살 2,2에서는 필립비에서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을 자기 편지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24

행정관들이 명령한 안전장치는 베드로의 수감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12.4). 바오로 일행은 깊숙한 감방에 갇혔고 그들의 발에는 차꼬가 단단히 채워졌다.

 

25

극적 사건들은 흔히 자정과 여명 사이에 일어난다. 루카는 예수를 본받아 제자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기도한다고 증언한다.

 

26

지진은 그리스 종교 안에서 신현의 한 표지다. 성서적 전승에도 지진은 신현에 동반된다. 바오로 일행과 관련된 하느님의 중재는 베드로의 탈출에서보다 덜 직접적이고 덜 개인적이다.

 

27

그리스 소설과 위경 문헌에서 자살은 지옥과 불명예와 상실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극도의 절명적 표현이다.

 

28

감방 문이 열려 있는 것을 간수는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죄수들이 도망친 것으로 착각했다. 그가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바오로가 큰 소리로 죄수들이 탈출하지 않았음을 알린다.

 

29

때는 한밤중이기 때문에 간수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등불을 달라고 청한다. 그가 눈으로 직접 바오로 일행이 탈출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다음 벌벌 떨면서 그들을 신의 사자들로 믿고 엎드려 예를 갖춘다.

 

30

이사 49.6의 인용과 더불어 13.47에서 언급된, 하느님에 계획에 따라 성취될 만인을 위한 구원이라는 주제가 16.17에 이어 다시 이곳에 등장한다.

 

31

비슷한 정식이 5.14; 9.42; 11.17에도 나온다. 구원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14.9; 15.11 참조. “당신의 집안은 고르넬리오의 이야기(11.14)와 리디아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32

바오로가 간수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전해준 주님의 말씀은 세례를 받기 전에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34

바오로가 간수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전해준 주님의 말씀은 세례를 받기 전에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5

편집 때 추가된 말로서 5절 이하를 15.27과 연결한다. “이것들은 박해상황과 제자들의 증언임무를 가리킨다. 예수가 이제까지 이것들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 상황과 임무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

예수의 고별이 제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는 뜻으로 그들의 상황과 몰이해를 시사한다. “이제란 예수가 떠남으로서 발생할 전혀 새로운 상황을 뜻한다.

 

예수의 이별 예고가 제자들을 슬프게 만들었으나 그 슬픔은 자기들만 세상에 남아 적대하는 세상과 맞부딪혀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문맥상 바로 그런 슬픔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 이 고별담화의 핵심 의도다. 그리고 슬픔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결정적 계기는 예수의 부활체험이며 부활한 예수에게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도 선사받게 된다(22절 참조)

 

7

진실로또는 진실을 말한다보다 깊은 표현으로서 예수의 말이 지닌 계시성을 시사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떠나감으로써 제자들에게 이루어질 상황과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데 대해 말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떠나감으로써 협조자가 올 수 있고 또한 제자들에게 이롭다는 것이다. 특히 이롭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제자들은 협조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면서 슬픔과 의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8

협조자가 오면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들추어내어 바로잡는다는 뜻으로서 세상에 대한 승리가 시사된다. 이 일은 예수가 세상에 옴으로써 이미 시작되었고, “협조자는 제자들과 함께 그 일을 계속한다.

 

9

협조자가 와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임을 밝혀준다는 뜻이다. 문법상 믿지 않기 때문에 죄에 대해 책망한다는 뜻도 가능하다. 이런 의미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된다. 하지만 문맥상 적절하지 못하다. “협조자의 이 일은 신앙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믿음은 믿지 않는 세상이 부당하게 믿음을 거절하는 데 대한 항구적 증언이다. “믿지 않는다의 현제 시제에도 이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이 나타나 있다.

 

10

더 이상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절절하지 못하다. 이유보다는 사실을 밝혀 올바르게 깨우쳐 준다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고 제자들이 예수를 더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임을 협조자가 밝혀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더는 볼 수 없는 예수가 아버지와 함께 머묾으로써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의롭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하느님이 예수를 의롭게

 

하셨다는 바로 그 사실로 믿음의 정당함이나 의로움도 드러난다. “협조자는 바로 이런 의로움을 밝혀준다. “협조자의 이런 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세상의 부당함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의로움은 세상에 대한 협조자의 심판적 특성도 내포한다(5.30;7.24 참조).

 

11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번역도 문맥상 적절하지 못하다. 믿지 않는 세상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 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두목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확실하다는 뜻이다. 심판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옴으로써, 예수가 땅에서 들어올려지고 이 세상 두목이 쫓겨남으로써 완전히 이루어졌다. 이제 협조자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그 사실을 밝혀주게 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전혀 들어보지도 또는 이름만 알뿐인

후보자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나이순으로 투표를 할까 합니다. 도지사는 제가 앞글에서

말한대로 투표할 것이고 교육감, 시장, 도의원, 시의원은 이제 투표안내문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투표해야 한다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지방은 그 지방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니 그 지방에서 제일 오래 거주한 사람에게 투표를 할 작정입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어야 겠습니다.

 

그렇다고 타 지방에서 전입해와서 산 사람도 있으니 그가 예전에 살았던 지방의 경험을 또한 무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여튼 나이가 많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도 나이가 많습니다. 미국은 합리주의이지요. 이미 공직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영국처럼 경험주의가 좋다면 낫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세가 이끌고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할 가나안 땅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던 모세는 죽었지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던 구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싸웁니다. 미국도 이미 거주하고 있던 인디안족들의 땅을 빼앗아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고심 고심한 결과로 나이순으로 하되 경험도 있어야하고 타지역에 살았던 사람도 배려하여 제일 많이 거주한 인물에게(나이가 많은) 한표를 투표하겠습니다.

 

지금 세상의 시대는 안정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비틀거리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도전하면서도 안정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나의 말을 들어.”라던 예전의 어릴적 말들이 떠오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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