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초록색 편지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2 조회수2,301 추천수33 반대(0) 신고

1월 21일 목요일 설 대축일-루가 12장 35-40절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초록색 편지>

 

또 다시 설입니다. 한 두 시간도 아니고, 다섯 시간, 열 시간, 열다섯 시간씩 꼼짝없이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뿌리를 찾아가는 우리 민족의 귀소본능이 새삼 특별하고도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왕 죽을 고생을 무릅쓰고 시도한 귀향길, 안전운행하시고, 꿈에도 그리던 훈훈한 고향 집에서 오랜 만에 재회한 가족친지들과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무사히 돌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점심식사 후에는 수도원에 남은 아이들과 눈부신 운동장으로 나가 열심히 축구시합을 했습니다. 칼바람이 불어와 볼이 다 얼어붙는 듯 했지만, 뛰면 뛸수록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듯 했습니다.

 

춥다고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많이 움직이고, 평소보다 더 많이 걷고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유익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축구시합을 끝내고 숙소로 들어오는데, 최근 들어온 사랑스런 꼬맹이 한명이 제게 다가오더니 제 손에 뭔가를 건네면서 그러더군요. "지금 말고 나중에 읽어 보세요."

 

초록색 종이에 색연필로 글씨를 쓰고는 똘똘 말아서 리본으로 맨 편지, 서툴지만 아이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편지였습니다.

 

"신부님, 저희랑 같이 놀아줘서 너무 좋아요. 제게 잘해주셔서 좋고 키 크는 약도 주어 감사해요. 앞으로 저의 소망은 지위가 올라가 신부님과 같이 외출하는 거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짧지만 진심이 담긴 아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코끝이 다 찡해왔고, 또 행복했습니다.

 

아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새해에는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좀더 신경 많이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능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현존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감히 청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다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이 한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플 때 가장 먼저 가슴아파하고, 가장 먼저 챙겨줄 사람, 우리가 죽은 순간 가장 슬피 울어줄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아웅다웅하고 매일 티격태격하던 배우자, 형제자매, 부모 자식들, 만났다 하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던 그 사람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람들, 서로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지요.

 

바로 그 사람들을 가장 우선적인 사랑의 실천 대상으로 여기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서로 눈감아주면서, 서로 용서하면서, 서로 인내하면서, 서로 끌어주면서,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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