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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하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2 조회수2,179 추천수3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2주간 화요일 -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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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무르팍 도사에 안철수 교수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가지고나온 고민은 ‘도대체 자신의 평생 직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통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 번 직업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라고 하듯이 그는 평생 돈과 성공을 포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책을 좋아하고 성적은 학교에서 중간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성적이 좋아져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박사과정까지 해서 한 대학교의 교수며 최연소 학과장을 역임하게 될 정도로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어느 날 한 후배의 컴퓨터를 고치며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당시 바이러스라는 것이 그리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였지만 홀로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여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합니다. 바이러스 백신으로 돈을 벌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3시부터 6시까지는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병원과 학교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7년 정도 고생을 하다가 6개월가량을 고민한 끝에 평탄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업에 뛰어듭니다. 본래 무료사업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부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 회사를 차리게 된 것입니다. 처음 4년은 직원들 월급 주는 것만 걱정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뒤 미국 큰 회사에서 천만 달러를 줄 테니 회사를 팔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몇 대가 평생을 먹고 살 돈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유일한 인터넷 바이러스 백신이 사라진다는 것, 자신의 직원들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또 몇 년 고생고생 하고 있는데 마침 우리나라에 바이러스로 인한 커다란 손실이 일어나는 사건이 생기고 컴퓨터 벤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백억을 돌파하게 됩니다. 회사가 안정이 되자 안철수 씨는 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주식을 모조리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갑자기 온 가족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입니다. 자신은 경영, 의사를 하던 아내는 법학, 딸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세 명이 한 도서관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돌아와 카이스트에서 천재들에게 돈만 밝히면 결국 다 망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편한 삶을 버리고 어려운 삶을 선택하고 사는 것일까요? 십자가의 성 요한도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의 선택이 있거든 항상 어려운 것을 선택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라고 말씀하시며 남들처럼 쉽고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어려운 삶을 선택해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살면서 그렇게 살기에는 정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사람은 본래 원죄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안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원하는 본능대로만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본성을 이기는 것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랑입니다. 육체와 영은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육체를 따르면 죽음이 오고 영을 따르면 생명이 옵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 보트를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노를 저어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그냥 있으면 망망대해에 미아로 쓸려 내려가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이기고 영을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단명료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육체의 본성대로 사는 사람은 나는 받기를 원하면서 남에겐 주기에 인색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원하면서 남을 무시하며,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법 중의법이란 뜻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수백억의 돈도 뿌리치며 우리나라 유일한 백신을 유지시켰고 직원들이 직장을 잃지 않게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원하고 직원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안철수씨는 어려운 길을 선택함으로써 이웃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해 준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금률을 지킨 것입니다.

 

슈바이쳐박사는 신학, 철학, 음악, 의학 등 4개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피아노 실력은 너무도 뛰어나서 계속 정진하였다면 세계 제일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영광과 보장된 미래를 내던지고 오지로 들어가 그곳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일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조금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는 예수님의 권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짧은 묵상>>

수녀님들은 아침부터 기도와 미사가 규칙적으로 있어서 당연히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기 싫어서 뒤척이다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혹 빨리 안 일어나도 될 때는 지나치게 늦잠을 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 하루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 같고 어쩌면 수도생활이 행복하지 못해서 그렇게 아침에 상쾌하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사제는 아침에 미사만 없다면 늦게 일어난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곤해서 낮잠을 잘 지라도 늦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규칙적으로 해야 할 기도와 일들이 많은데 그것을 늦추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하고 지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다 잠이 부족하면 더 자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아침 형 인간’들이 잠이 없어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저도 매일 아침에 제 자신과 싸웁니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앉아서 조금 더 잘까, 아니면 그냥 일어날까를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물론 항상 의지가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아침에 충분히 늦잠을 자고 그래서 상쾌하게 일어나면 해야 하는 일들이 밀려서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상쾌함은 잠시 뒤에 끝장나게 됩니다.

반대로 일찍 일어나서 운동과 기도를 하고나면 잠자리에서 나올 때는 괴롭지만 하루가 보람 있게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새벽미사에 나왔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침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육체적 본성을 이겨야 하루를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자신과의 싸움을 매일 아침마다 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육체의 유혹을 느꼈을 때 자신의 몸을 장미 가시밭에 뒹굴면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미들은 지금도 가시가 나지 않습니다. 왜 한 번 유혹에 빠졌다가 다시 고해성사를 보면 되지 그렇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몸에 고통을 주었을까요?

우리의 영혼은 작은 샘과 같습니다. 샘이 맑으면 사람들이 그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진흙이 존재해서 누가 바닥을 막대기로 휘저어놓으면 흙탕물이 되어서 그 샘물은 마실 수 없게 됩니다. 그 물이 다시 맑아지려면 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죄를 지은 영혼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에게도 생명을 주는 물이 안 되고 남에게도 생명수가 될 수 없습니다. 고해성사를 보았다고 다시 곧바로 생명의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 물속에 있는 오물들이 가라앉아야 지금처럼 생명을 줄 수 있는 물로 다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욕망과 싸우지 않으면 마치 강에 띄워둔 나룻배처럼 한없이 바다로 밀려나게 됩니다. 물론 넓은 강에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살이 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점점 완전으로 나아가면서 강폭이 좁아져 물결이 빨라질 때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도 처음엔 어렵지 않다가 올라갈수록 더 가팔라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처럼 성인들의 자신과의 싸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길은 쉬운 길이며 저절로 파멸에 이르고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은 가시밭길입니다. 우리는 매일, 어쩌면 매순간 이 육체적 욕망에 휩쓸려 내려갈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절대 그 싸움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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