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제 답은 찾았는데...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1-03-20 조회수2,519 추천수32 반대(0) 신고

터널의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그 어둠의 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일에 매진하게 되어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나를 엉겁결에 번역하고

이제 교정을 끝내고 인쇄에 넘기게 되었다.

그 은덕인가,

이제 그 답을 알 것 같다.

 

내가 왜 나를 미워하여 비겁한 짓을 한다고 여긴

그 한 형제에 매여 있었단 말인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단 말인가?

심지어 베드로 사도도 똑같은 고민에 빠졌었는데

나라고 그 미움의 고민에 빠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제자 공동체의 맏형으로서 베드로가 겪었을 어려움을 생각해 본다.

나이가 있어 형이 되었지만, 능력은 그만큼 못따라 주었다.

배운 것이라곤 고기잡는 것 밖에 없었고

시골 출신이라 그리 약삭빠른 형이 못되었다.

그래서 도시 출신의 모 형제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시비를 따지는데만 급급한 동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깐깐한 비판을 겪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말로써는 질 수밖에 없으니

끽 소리 못하고 그저 참을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러던 베드로도 참을 데까지 참다가 도저히 못참겠다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 말씀드린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하면 도데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번이면 되었지요?

이제 한번 퍼붓고 한대 때려줘도 되겠지요?

도저희 못참겠네요.

보자보자 하니,

내가 나이가 지보다 적나,

그래서 윗사람인데...

그럴 수가 있나요?>

 

주님은 허허 하시며 너털웃음만 지으시다가

<베드로, 그렇다면 진작에 한대 쥐어박지

뭐할라고 지금까지 참았냐?

지금 한대 쥐어박으면

참아왔던 것이 너무 억울하지 않니?

야, 참을라면 끝까지 참아버려!>

 

그렇다!

나는 크게 두번 참았다.

물론 소소한 것까지 따지면 일곱번 쯤 되겠지만

내가 상처를 입은 것은 두번 정도이다.

베드로보다도 덜 참았다.

주님도, 나를 보고 너털 웃음을 지으신다.

 

......

 

아나니아와 아자리아와 미사엘은

불가마 속에서도 꿋꿋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은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

하느님이 함께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

행복하고 기쁜 중에만 아니라

시련 중에도 그분은 나와 함께 계셔주셨고, 늘 그러하시다.

그런데

그 하느님을 내가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내가 겪는 시련은

기쁨 중에 참아받을 수 있는 십자가가 되기도 하고

지옥같은 십자가가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

미사중에

나는 그 하느님을 보았다!

나와 함께 계신 그 하느님을!

그분은 나와 함께 울고 계셨고

또 나와 함께 미소짓고 계셨다.

그래,

이제 답을 찾았다!

훌훌 털고 터널을 빠져나가자.

저희 희미하게 나마 빛이 보이지 않는가?

터널의 끝이 다 되었다는 표시이다.

그 빛은

새로운 빛이리라.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했던 그 <어둔 밤>을 겪은 영혼이

누리는 그 빛 말이다.

이제 그 빛을

더욱 깊이 감사하리라.

한 동안 눈을 감고 그 빛을 음미하리라.

새로운 부활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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