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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전례복과 수도복의 역사와 상징과 영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3,369 추천수0

전례복과 수도복의 역사와 상징과 영성

 

 

들어가는 말

 

옷은 기능성과 상징성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이 가운데 상징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의 인간 창조 설화를 보면, 하느님은 낙원에서 쫓겨난 헐벗은 첫 인간에게 손수 가죽옷을 지어주셨다 (창세 3,21). 이 단순한 말마디에서 우리는 옷이 지닌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옷은 하느님의 보호와 배려를 상징하며 동시에 죄로 잃어버린 품위로 인간이 불림 받았다는 약속을 드러낸다. 이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새 인간을 ‘갈아입게 되었으며’ (골로 3,10; 에페 4,24), 구원의 상징인 ‘흰 예복을 입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흠숭을 드린다 (묵시 7,9-17). 

 

이러한 성서적 상징이 가톨릭 교회의 전례복과 수도복에 담겨있다. 전례복이란 신자들이 모여 하느님께 공적으로 예배드릴 때, 다시 말해서 전례(Liturgia)를 거행할 때 주례 사제를 비롯한 여러 전례 봉사자들(복사, 성가대, 독서자, 해설자 들)이 입는 예복을 일컫는 말이다. 한편 수도복은 전례복과는 다른 옷으로서 수도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을 말한다. 이는 수도자 신분을 드러내는 축성의 표지이자 청빈의 증거이며 어느 수도회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지이다. 전례복이나 수도복이나 모두 교회의 옷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상징적 의미와 영성을 지니고 있다.

 

 

제의의 역사

 

여러 종류의 전례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가 입는 제의(祭衣)다. 제의의 기원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복식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300년 박해 기간에는 미사를 드릴 때 주례 사제만의 특별한 옷이 없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미사를 드렸다. 그 좋은 본보기가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 장소였던 로마 지하무덤(카타꼼바)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로마 일반 시민들이 입었던 의복과 같은 것을 입었다. 

 

4세기에 이르러 박해가 끝나고 그리스도교는 이제 제국에서 유일한 국교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례 중에 성직자들은 일상 옷 중에서 품위있는 옷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 상류층의 의복이 자연스럽게 교회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고위 성직자인 주교에게는 로마 황제가 특권과 지위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전례 중에 주교가 입었던 옷에서 잘 드러난다. 주교의 복장은 왕이 입는 용포(龍袍)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쳐 야만족이 서 로마 제국의 국경선을 넘어옴에 따라 서방에서는 사회, 정치, 문화 등 제국의 기존 체제가 붕괴되고 말았다. 자연히 야만족의 풍습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7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식 형태를 유지하던 제의는 변화되어 가던 일반 사람들의 옷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고 정착되었으며, 12세기에는 교황의 복장을 중심으로 전례복은 예배를 수행하는 가운데 특정인의 고유한 역할을 상징하는 차원을 분명히 지니게 되었다. 그 후 제의는 몇 가지 변화를 걸쳐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다. 

 

오늘날 미사 때 사제가 입는 전례복은, 속옷의 기능을 하는 길고 통이 넓은 치마 형태로 된 장백의(Alba)와 장백의를 묶는 띠(Cingulum)와 목에 걸쳐 늘어뜨리는 긴 천으로 된 영대(Stola), 그리고 장백의 위에 입는 겉옷인 제의(Casula 또는 planeta)로 되어있다.

 

 

제의의 상징과 영성

 

우리는 제의에서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품위를 발견한다. 음악가는 음으로, 화가는 선과 색채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시인은 언어라는 상징적 재료로, 제의를 만든 이는 천과 색실로 무한한 미 자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낸다. 제의에 스며있는 아름다움은 우리를 정화하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도록 우리를 초대하며, 아름다움(美) 자체이신 하느님을 우리가 관상하게 한다. 아름다움 안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나고,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보게끔 하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것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제의를 입고 미사를 드리는 사제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신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봉사자이다. 이처럼 제의에는 ‘아름다움의 영성’이 듬뿍 담겨있다.

 

제의에는 어린양, 십자가, PX, Α(알파) Ω(오메가), 포도나무 등 여러 상징적 문양들이 수 놓여있다. 이 상징들은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제의의 문양들은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가 “여기 지금”(hic et nunc) 그리스도로 드러나고(in persona Christi), 또한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인격을 통하여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재현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경축하는 전례시기와 축일에 따라 제의의 색깔이 바뀐다. 대축일과 부활시기에는 영광과 기쁨을 상징하는 백색으로, 순교자 축일에는 순교를 상징하는 홍색으로, 사순시기나 위령 미사에는 회개와 참회를 뜻하는 자색으로, 그리고 연중 시기에는 녹색으로 한다.

 

제의에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기도가 담겨있다. 제의는 보통 수도생활을 하는 자매들이 만든다. 수녀들은 기도의 날실과 씨실을 엮어서 연약하지만 섬세한 바늘로 한올 한올 수를 놓는다. 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사람들은 아름답고 품위있는 제의를 보면 이 안에서 찬미와 흠숭의 기도 소리를 듣는다. 깊이 기도할 때 우리는 영원을 만난다. 그득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신비가 수 놓여있다. 그래서 제의는 하느님의 거룩하심(聖性)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제의는 땀방울로 이루어진 겸손한 노동이 맺은 열매이다. 제의를 만든 수녀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이 얼마나 위대한 겸손인가. 제의에서 제의를 만든 손의 깊은 침묵을 느낀다. 이 겸손의 땀방울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한다. 하나의 제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의는 힘든 노동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이 노동은 ‘거친’ 노동이 아니라 ‘아름다운’ 노동이다. 아름다운 노동이라야 참된 인간적 가치를 지닌 노동이다. 아름다운 노동을 통해서 제의를 만든 이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이 세상에서 계속 수행한다. 

 

사제는 제의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축복 기도를 바친다. “하느님, 당신의 외아드님을 신약의 대사제로 세우시고 당신 신비의 분배자로 사람을 선택하셨으니, 전례 거행을 위한 이 옷들을 몸소 축복해 주시어, 당신의 종들이 경건하게 이 옷을 입으며 거룩한 생활로 더욱 빛내도록 힘쓰게 하소서.”

 

 

수도복의 역사

 

수도복은 4세기 전반 교회에서 일어난 수도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례복과는 달리 수도복은 원래 사회 하층 계급이 입는 평상복이었으며 수도원이 있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싸고 거친 옷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원래 수도자와 일반 신자들 사이를 구별하는 표지는 수도복이 아니라 수도자의 머리 한 가운데를 둥글게 깎는 삭발 (tonsura)이었다. 그 후 시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단순한 모양새를 유지했던 수도복은 다른 일반 사회 옷과는 구별되었고, 마침내 수도자의 신분을 드러내 주는 표지가 되었다.

 

오늘날의 남자 수도복은 기본적으로 긴 치마 모양의 투니카(Tunica), 띠, 투니카 위에 앞뒤로 소매 없이 걸쳐 입는 스카풀라(Scapula), 그리고 머리에 쓰는 두건으로 되어있으며, 여자 수도복은 두건 대신에 머리 수건(Veil)를 쓴다. 수도회에 따라 그 형태와 재료와 색깔이 다르다.

 

 

수도복의 상징과 영성

 

어떤 젊은 수도자가 연로한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수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의 대답인즉, “날마다 ‘수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하고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 바로 수도자라네.” 수도복은 수도자 자신의 신원을 되새김질하게 도와준다. 내가 몸담고 있는 수도원에서는 수도복을 입을 때마다 “하느님, 제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게 하소서”(에페 4,23-24)라는 기도를 바친다. 이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수도복은 끊임없는 수도자 자신의 쇄신과 변모와 수행의 과정을 온전히 담고 있는 표지다. 그렇지만 수도복이 수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수도복은 외적 수단일 뿐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수도복은 한 수도자가 구체적인 수도 공동체에 속한 형제임을 드러낸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새로 들어온 형제의 세속 옷을 벗긴 다음, “우리 공동체의 옷을 입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수도복을 입힌다. 특히 같은 옷을 입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공동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에 모일 때마다 공동체 정신을 수도복은 드러낸다. 

 

수도자는 허원을 할 때 순명과 가난과 정결을 서약한다. 수도복이 이 세 가지 약속을 다 드러내지만, 특히 가난과 겸손의 표지를 잘 드러낸다. 대체로 수도복의 색깔은 검은색이나 고동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 계통이고 그 형태는 단순 소박하며 그 옷감은 값싼 것으로 한다. 이러한 색상과 질은 가난과 겸손과 참회의 표현이다. 때로는 수도복으로 말미암아 타인한테서 멸시를 받기도 한다. 우리 공동체의 한 형제는 수도복을 입고 물건을 사러 갔는데 어떤 상점의 주인이 그 형제를 보자마자 “아침부터 재수없네” 하면서 소금을 뿌렸다는 얘기를 나한테 해주었다. 그 형제는 조용히 물러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수도복은 멸시를 달게 받는 겸손의 상징이다.

 

옷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면을 갖고 있듯이, 수도복 역시 수도자를 외적인 유혹에서 보호해 주기도 한다. 우리 수도원의 노인 형제들은 젊은 수도자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수도자로서의 완성은 자신이 수도복을 입고 관에 누워있을 때 확인된다네.” 사실 수도자로 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복은 넓고 무거우며 노출이 심하지 않고 화려한 색이 아닌 옷으로 세속적 유혹과 타인의 욕심으로부터 수도자를 보호하여 죽을 때까지 수도자로서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준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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