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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다시 쓰는 부활찬송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2,177 추천수0

다시 쓰는 부활찬송

 

 

수도원 정원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회색 빛깔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봄이다. 이 봄의 한 가운데서 우리 형제들은 참다운 봄 잔치를 지내는 위대한 밤을 만난다.

 

한 해의 모든 밤 가운데 가장 은혜롭고 신비로운 이 밤, 부활 성야 성찬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우리 수도원의 형제들은 침묵 가운데 행렬하여 성당 앞뜰에 놓은 작은 화롯불 둘레에 모인다. 아빠스님이 이 화로에서 새 불을 축복하신다. 이 불에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작은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는 꿀벌이 만든 부활초에 불을 당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부활초를 따라 어둠이 깔린 성당으로 행렬해 들어간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라오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요한 8,12).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부제는 부활초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소리를 높이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한 소리로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환호한다. 이 말씀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손에 든 작은 초에 부활초에서 불을 옮겨 받는다. 이 소박한 동작이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게 되었다는 놀라운 신비를 상징한다. 성당 안에 들어가서 우리는 부활초를 중심으로 둘러선다. 드디어 성당 안은 빛으로 가득 찬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대 위에 그리스도 빛나시리라” (에페 5,14; 시편 40,6). 40일 내내 참았던 우리의 기쁨이 이제 터져 나올 시간이다. 온 우주와 함께 신명을 다해 노래할 때다. 부제의 입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것이 부활찬송(Exsultet)이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땅도 기뻐하라... 기뻐하라 자모신 성 교회...” 이 노래는 새로운 창조의 새벽을 찬미하는 노래이며,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환호이며, 어둠을 몰아낸 빛의 울림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빛의 밤을 노래하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어둠 때문에 불안에 떠는 신음소리를 듣는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생명의 빛보다는 죽음의 어둠이 더 짙다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수도원 가까이 있는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참사로 많은 사람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죽고 다쳤다.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많은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희생자들의 얼굴이 우리 뇌리를 스친다.

 

이 참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조금 지나면 이 사건을 차분히 다시 생각하면서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날카로운 질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이 건설한 사회 구조를 냉철히 보도록 한다. 불을 지른 그 사람과 얼굴 한번 마주 친 적도 없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어째서 희생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한 사람의 악한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도, 강대국의 몇몇 정부 당직자들의 결정이 힘없는 한 나라를 위험에 쳐해 있게 하고 그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의 위협 속에 살게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죽음의 구조’라 부르고 싶다. 이렇게 몇 사람의 악한 행동과 판단이 우리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러한 죽음의 구조에 갇혀 우리는 한탄과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하는가?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이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고백하게 된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단지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을 바라볼 뿐이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할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맨 처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이 만드신 작품을 보시고 “보기 참 좋더라” (창세 1장) 하고 감탄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시다. 하느님의 감탄과 놀라심이 바로 이 세상한테는 축복이다. 하느님께서는 온갖 짐승과 첫 인간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창세 1,22.28). 그렇다, 인간의 원죄(原罪)가 있기 훨씬 전에 하느님의 원복(原福)이 먼저 존재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존재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의 생명이다. 우리 인간들의 온갖 죄와 악일지라도 하느님의 근본적인 축복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다. 곧, 부활 밤 세례 때 하느님의 생명력이신 성령이 내리신 물에 들어가면서 옛 인간은 죽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새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재생의 세례를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곧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찬송에서 죽음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우리의 죄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탓이여 (O felix culpa)!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그래서 부활밤은 다른 밤과 근본적으로 다른 밤이다. “이 밤은,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밤”이기 때문이다. 이 밤에서 출발하여 이제 이 밤은 과거와 같은 밤이 아니라, 해가지지 않는 낮을 잉태하는 밤이 되었다. 밤은 아직도 존재하지만 생명을 낳는 밤으로 변모하였다. 이 밤의 신비를 시편의 시인은 이미 노래했다. “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 (시편 139,12). 부활 찬송을 노래하면서 부활초와 우리 손에 든 초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이 죽음을 상징하는 “밤의 어둠을 물리친다.” “어둠이 사라지고 참된 빛이 이미 비치고 있다” (1요한 2,8). 실로 이 밤은 “죄악의 어둠을 몰아 낸 밤”이다.

 

“오 참으로 복된” 이 밤은 “하늘과 땅이 결합된 밤,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된 밤”이다. 곧 우리는 성 바울로의 말씀대로 “한때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 (에페 5,8)이 되었다. 우리는 비록 추운 겨울일지라도 찬란히 빛나는 봄의 생명력을 이미 몸에 지닌 이들이다. 사실 모든 피조물도 빛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 자신도 썩음의 종살이에서 마침내 하느님 자녀의 영광스런 자유로 해방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로마 8,19.21). 칠흑 같은 밤보다 더 어두운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 땅에 사는 빛의 자녀답게 우리는 하늘 군대와 이 땅의 모든 피조물과 하나되어 생명의 빛을 노래해야 하리다. 부활찬송은 빛의 자녀만이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래이기 때문이다 (묵시 14,3 참조).

 

이 새로운 노래는 우리 삶으로 노래하는 찬가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앙하게 하시오” (마태 5,14.16) 하신다. 나는 백발이 성성한 우리 수도원의 노인 형제들을 볼 때마다 부활찬송을 마음의 귀로 듣는다. 한 평생을 기도하고 일하는 삶에 투신한 노 수도자들의 숨어있는 삶이 부활찬송이다. 이 형제들의 기도책은 손때가 가득하다. 어떤 노인 형제는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묵주기도를 바친다. 묵주알을 돌리는 손이 참으로 아름답다. 어떤 형제는 휠체어에 앉아서 성체조배를 한다. 감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정말 아름답다. 이처럼 수도원 울타리 안에서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루가 1,79) 위해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들이 부활의 참 노래꾼들이다.

 

우리의 온 삶으로 생명의 노래를 부를 때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도 함께 이 생명의 신비를 노래한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라 하늘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찬 나팔 소리.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한 임금의 광채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라, 세상 어둠 사라졌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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