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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주님의 얼이 온 누리에(성령 강림 대축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1,957 추천수0

주님의 얼이 온 누리에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며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성령강림 대축일 복음 환호송)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 수도 공동체는 월피정을 하고 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한 시간 동안 정원을 걷다보니, 자연히 목을 움츠리게 되고 겉옷 자락을 목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바람이 제법 차고 제법 쌀쌀하다. 며칠 전에 모처럼 봄비가 내려 대지가 길고 어두운 잠에서 더 빨리 깨기를 재촉하니 푸른 싹은 신화에 따라 일제히 머리를 내밀고 있고, 애써 피운 봄 꽃잎들은 바람에 흩날리어 여기저기 땅에 떨어져 있다.

 

우리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다. 사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 구원의 완성이요 절정이기 때문에 단 하루로 경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 팔일 축제’를 통해 부활 대축일을 연장하여 경축하고, 더 나아가 50일 동안의 ‘부활시기’를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기쁨과 활력을 우리 존재 깊숙이 새기고 확장하도록 마련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구원사업의 첫 열매를 수확하는 날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동안 경축한 파스카 시기를 끝맺는 날을 맞이한다. 바로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이 날은 그리스말로 ‘펜테코스테’ (pentekoste)라 하는데, 곧 ‘50’ (오순절)이란 단어에서 나왔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께서는 성령을 마리아를 비롯한 제자들 위에 내려 보내셨다 (사도 1,12-14; 2,1-4).

 

교회의 많은 영성가들은 자신들이 체험하고 느낀 하느님의 은총을 강물에 비유하고 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힘차게 쏟아지는 은총의 강물에 흠뻑 잠겨본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동시에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외감은 영적인 놀라움이고 내적인 경탄이다. 파트모스의 예언자인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에 대한 놀라운 환시를 우리에게 상징적 언어를 통해 전해준다.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도성의 거리 한 가운데, 강의 이편 저편에 열두 번 열매맺는 생명나무가 있어 다달이 열매를 맺었고 그 잎들은 만국 민족을 치료하는 데 쓰였습니다” (묵시 22,1-2). 여기에서 새 예루살렘은, 먼 미래에 또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올 이상적 도성이 아니라,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오늘날의 교회를 말하고, 이 도성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은 성령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예수께서는 목마른 우리에게 생명수의 강이신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시오. 나를 믿는 이는 마시시오. 성서가 말한 대로 ‘생명수의 강이 그의 배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영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7,37-39: 성령강림 대축일 전야미사 복음).

 

사실 생명수의 강이신 성령은 한 처음부터 인간 역사 안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운반하셨고, 그분이 흘러들어가는 곳에는 항상 생명이 넘실거리고 놀라운 사건이 꽃을 핀다 (창세 1,2 참조). 역사의 전개에 따라 성령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형성시킴으로써 (이사 32,15; 에제 36,27 참조) 하느님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실 궁극적인 구원의 때를 준비하셨다. 때가 차차 마침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에게서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고 (마태 1,20; 마태 1,18; 루가 1,35), 또한 성령께서는 공생활의 시작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셨으며 (루가 3,21; 요한 1,32-34 참조),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협조자이신 성령의 파견을 약속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영원히 함께 계실 다른 협조자를 그대들에게 붙여 주실 것입니다” (요한 14,16: 성령강림 대축일 다해 낮미사 복음).

 

우리는 미사의 감사기도 제4양식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파스카 사건과 성령강림 사건의 밀접한 관계에 관해 이렇게 고백한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을 위하여 살도록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첫 열매로 보내주셨나이다. 성령께서는 성자의 구원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나이다.” 그렇다, 아버지와 아드님의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교회가 이 세상에 탄생했고, 교회는 성령의 비추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지상에서 계속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계약의 백성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새로 세워진 교회와 만민에게 천상 지식을 넣어 주시고,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나이다” (성령강림 대축일 감사송).

 

요한복음에 따르면 한 병사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나왔다고 한다 (요한 19,34). 교부들은 주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는 성체성사를, 그리고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성사들은 교회를 지탱하는 큰 두 기둥이다. 다시 말해서 성체성사는 교회에 생명을 주고 세례성사는 교회 구성원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성사이다. 바로 성령께서 이 중요한 성사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인 힘이시다.

 

성 바오로는 성령과 세례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모두가 한 영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1고린 12,13: 성령강림 대축일 낮미사 제2독서)고 한다. 이 좋은 예가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잘 나온다.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는 “한마음 한정신” (사도 4,32)으로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고” (사도 2,44)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사도 4,31). 이러한 영적인 일치와 형제애를 통한 증거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례를 거행할 때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다. “신도들은... 빵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다” (사도 2,42b). “날마다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흥겹고 순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했다. 그리하여 온 백성에게 호감을 샀다. 주님은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늘려 주셨다” (사도 2,46-47).

 

그런데 성령강림 사건은 2000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집회가 계속적인 성령강림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특히 성찬례에서 우리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체험한다. 우선 우리가 바친 예물인 빵과 포도주 위에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청원한다. “거룩하신 아버지,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마리아에게 성령이 오심으로써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이제 성령께서 예물 위에 내려오심으로써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일치시키기 위해 우리 위에 내려오신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이렇게 미사에서 우리가 사제의 입을 통해 성령이 예물과 우리 위에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에피클레시스’ (epiclesis), 우리말로는 ‘성령청원기도’라고 한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성령의 생명수를 받아 마심으로써 ‘제2의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인’ (christianus)이 되었고,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변모하여 생명을 나누어주는 일꾼이 된다. 무명의 어떤 저자가 성령의 도움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할 사랑과 생명의 사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우리의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손이 없으시지만 우리 손만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발이 없으시지만 우리 발만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 관해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위하여 입술이 없으시지만 우리 입술만 있다. 우리는 민족들이 읽는 유일한 성서이다. 우리는 행동과 말을 통하여 기록된 하느님의 마지막 메시지이다.”

 

[성서와함께, 2004년 5월호, 인 끌레멘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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