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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동정 마리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2,710 추천수0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동정 마리아

 

 

초가을 수도원을 비집고 들어온 제법 서늘한 바람이 햇볕 사이로 빼곡히 찬 작은 숲을 스치자 나무는 노란 옷을 갈아입는다. 우리 공동체도 가을의 문턱에서 여름 동안 입었던 흰 수도복을 벗고 검은 수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시리도록 푸른 가을, 때 묻은 영혼을 말갛게 씻어줄 것만 같은 가을은 우리 수도자에게는 내적 고독을 더욱더 피부로 느끼는 계절이고 내적인 고독안에서 참된 현존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목말라 할 시간의 여유를 주는 계절이다. 누렇게 변해가는 잔디 위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홀로 느끼면서 묵주 한 알 한 알을 돌리며 천상 어머니께 기도한다. 10월은 교회가 정한 묵주기도 성월이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드리는 장미향 그윽한 기도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복음을 요약하는 기도이다. 어머니다운 현존으로 마리아는 우리의 고독을 장밋빛 사랑의 망토로 감싸 안아 주신다. 마치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보듬어 안 듯이.

 

우리는 묵주기도를 비롯한 다양한 개인 기도에서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고 우리 자신을 의탁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의 공적 기도인 전례에서 성모님을 기념하고 공경한다. 그런데 성모님은 홀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거행하고 현재화하는 전례에서 우리는 성모님이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풀릴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 계시기” (전례헌장 103항) 때문에 주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 성모님을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해 드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 전구를 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례는 성모님을 어떻게 예수님과 깊은 연관을 맺고 계신 분으로 드러내는가, 또 전례는 성모님을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가.

 

성모님께 대한 기념제가 아드님의 신비를 기념하는 전례주년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있다. 대림시기에는 구세주를 맞이할 근본적인 준비 (이사 11,1.10 참조)를 하고 순결한 교회의 태동을 미리 보여주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12월8일) 경축하는 것 외에도 성모님을 자주 언급한다. 특히 성탄이 임박한 대림시기 둘째 시기 (12월17일- 24일)에 속하는 대림 제4주일 제1독서에서 동정 어머니와 메시아에 관한 옛 예언들을 회고하면서 (가해: 이사 7,10-14; 나해: 2사무7,1-5.8b-12.14a-16; 다해: 미가 5,1-4a) 구세주와 선구자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복음을 듣는다 (가해: 마태 1,18-24; 나해: 루가 1,26-38; 다해: 루가 1,39-45). 이처럼 우리는 아드님을 기다리시는 동정 어머니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면서 마리아를 본받아 곧 오실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기도하고 기쁜 노래로 찬미한다. 성탄시기에는 “동정의 순결한 몸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를 낳아주신” (성탄 대축일과 성탄 팔일축제 감사기도 제1양식) 마리아의 순결하신 모성을 계속하여 기념한다. 사실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구세주를 경배하면서 아울러 그분의 영광스러운 어머니를 공경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온 세계가 구원으로 초대되었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동방 박사들에게 만백성의 구원자를 경배하도록 하신 (마태 2,11 참조) 복되신 동정녀께서 참된 지혜의 좌요 왕의 어머니이심을 관상한다. 성가정 축일에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와 의인 요셉(마태 1,19 참조)이 나자렛 가정에서 사신 거룩한 삶을 묵상하면서 깊은 존경을 드린다. 그리고 새해 첫날에 지내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 주신 거룩한 어머니의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동시에 이날은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 (루가 2,14 참조)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시작과 함께 경축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은 “마리아의 아들” (마르 6,3)이 되신 말씀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린다. 말씀이 강생하여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느님,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히브 10,7; 시편 39,8-9 참조) 하신 그리스도의 ‘피앗’ (fiat)과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38) 하신 마리아의 ‘피앗’을 연결시키면서, “유일하신 중재자” (1디모 2,5)를 잉태하심으로써 모든 이의 어머니요 참된 계약의 궤요 하느님의 궁전이요 새로운 하와이신 동정녀를 기념한다. 특히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성모님의 자유로운 동의와 협력을 강조한다. 8월15에는 영광 가운데 하늘에 불러올림 받으신 성모님을 경축한다. 이 축일은 동정의 육신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신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제이다.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에게 그 바라던 궁극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고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 (히브 2,14; 갈라 4,4 참조)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러한 영광을 충만히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날이다.

 

이러한 대축일들 다음으로는 복되신 동정녀와 그 아드님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있는 구원사건과 관련된 축일들을 특별히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축일에는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8일), 성자를 잉태하시고 엘리사벳을 찾아가 친절히 봉사하면서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선언하신 (루가 1,39-56 참조) 마리아를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31일), 그리고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달리신 아드님 곁에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9월14일) 마음으로 함께 수난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요한 19,25-27 참조) 고통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9월15일)이 있다. 또 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에는 성모님을 주님의 고통받는 종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요 옛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명을 수행하시는 분이요 고통과 시련으로 신앙과 희망을 시험당하는 (루가 2,21-35 참조)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모델로서 이 신비에 깊이 연관되어계신 분으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성모님은 전례 거행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찬례에서 당신 아드님과 함께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신다. “저희는 온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 주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영광스러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비롯하여... 생각하며 공경하오니 그들의 공로와 기도를 보시어 모든 일에 저희를 도우시고 보호하소서” (감사기도 제1양식). 또 마리아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고 도움을 받는다.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감사기도 제2양식). “아버지께서 뽑으신 이들, 특히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상속을 받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성인들의 전구로 언제나 도움을 받으리라 믿나이다” (감사기도 제3양식).

 

우리는 전례 거행에서 성모님을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고 깨어 기도하시는 동정녀로 만난다. 마리아의 신앙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전제 조건이요 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깨달았듯이 “복되신 마리아는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을 믿음으로 낳으셨기” 때문이다. 믿음은 마리아의 복됨과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의 원천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루가 1,45). 신앙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구세주 강생의 주역을 담당하게 되셨고, 그 유일한 증인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유년기 사건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셨다 (루가 2,19.51 참조).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분이시기에 참으로 복되시다 (루가 11,28 참조). 그래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생활화하는 우리가 취해야 할 영적인 태도의 뛰어난 모범이시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시오” (야고 1,22). 비잔틴 전례의 목요일 아침 성무일도에서 삼위일체 안에서 복을 누리시는 성모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오 마리아시여, 당신은 황금 향료가 되셨고,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으신 성 삼위의 지극히 순결한 궤가 되셨나이다. 당신 안에서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시고 아드님께서는 당신을 거처로 삼으셨고 성령께서는 영의 그늘로 덮으시어 당신을 축성하셨나이다. 오,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성모님 앞에서 조용히 기도한다. “가장 은혜로우신 분, 가장 아름다우신 어머니, 저희가 바치는 묵주기도 엮어 천상화관 만드소서! 아멘.”

 

[성서와함께, 10월호, 인 끌레멘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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