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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거룩한 표징: 문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1 조회수2,189 추천수0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문턱 (1)

 

 

많은 문에는 문턱이 놓여 있습니다. 이 문턱은 아주 낮은 계단으로서 문지방 너머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주고, 아울러 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의식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아울러 문턱은 안과 밖, 곧 공간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의 구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줍니다. 문턱은 문이 열리면 곧 이루어질 만남에 대하여 준비하도록 잠깐 동안의 여유를 마련해 줍니다. 문턱은 미리 기쁨을 맛보도록 하면서도 문지방을 넘는 데 따르는 두려움도 감지하게 합니다. 공간적인 문턱뿐 아니라 새해나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특별한 의미의 시간적인 문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적인 문턱은 두려움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문턱을 아주 낮추거나 없애버리면 삶이 진부해집니다.

 

20여 년 전 농부의 아들인 동창 한 사람이 자신의 첫 미사에 저를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첫 미사가 끝난 다음 우리는 새 신부의 고향집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집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외딴 농가였습니다. 몇몇 할머니들이 집 앞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 신부의 숙모라고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태어나 수십 년 동안 살아왔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집 주인이 분명하게 들어오라고 초대하지 않는 한, 그 집 문지방을 넘어서 본적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실에 들어서기 전에도 문지방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갈 때 허락 없이 절대로 그 집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오랜 관습이라는 설명도 곁들여 전해 주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로서는 그렇게 문지방을 존중하는 모습이 매우 낯설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다음 저는 동창의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머니의 시신을 그분이 살던 농가 안에 모셨습니다. 아들들이 관을 메고 집의 문턱을 넘어설 때 잠시 멈추어 서서 관을 십자가 모양으로 움직였습니다. 그것은 작별의 표징으로 매우 인상 깊은 체험이었습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문턱과 관련한 귀중한 관습이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관습이 사라질 위험에 놓여있거나 아니면 이미 사라졌습니다. 신부 또는 새로 태어난 아기가 앞으로 살게 될 집에 들어설 때 정성스럽게 환대를 받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들을 안고 문턱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문지방을 초인종, 마이크 설비, 비디오 카메라 등의 새로운 기계들이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 기계들이 기술적 기능을 수행할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문지방이 지니고 있는 존엄함을 지니고 있지는 않는 듯합니다. [2012년 3월 11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문턱 (2)

 

 

부르군드 지방에 소재하는 테제 공동체의 수도사들 역시 새롭게 되고 싶은 이러한 갈망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수도사들은 하얀 도화지를 성전 계단에 일정 시간 놓아두었습니다. 그 도화지 위에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호소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계단을 오르는 여러분은 서로 화해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와, 아버지는 아들과, 어머니는 딸과, 원주민은 이방인과, 인간은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러한 호소는 아무런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참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은 도화지를 발로 밟아 그 평화의 호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평화의 호소에 힘입어 어느 정도 또는 근원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문턱과 관련하여 아주 감동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주교품을 받은 다음 처음으로, 지금은 바로크 양식이지만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저의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성대한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들어서다가 무심코 움푹 팬 곳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그 움푹 팬 자국은 지난 8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돌로 된 문턱에 남긴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60여 명이나 되는 저의 선임 주교들도 포함됩니다. 잠시 동안 저는 전통에 관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영적으로 뛰어난 영국의 길버트 키이츠 체스터톤(Gilbert Keith Chesterton)은 “전통은 죽은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다.”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는 죽은 이들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논의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은 이들도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입니다. 성당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집입니다. 오래되어 닳은 문턱은 마치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문턱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게 해줍니다. 문턱이 없다면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고 기쁨도 없이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2012년 3월 18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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