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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거룩한 표징: 그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1 조회수2,637 추천수0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그림

 

 

릴케는 하느님께 바치는 자신의 기도서에서 “당신을 위하여 첫 번째 책이 쓰였고, 첫 번째 그림이 그려졌습니다.”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초기 문명의 글과 그림은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신적인 힘과 위격들이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경우 하느님의 형상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소수 민족인 이스라엘은 이웃 민족들의 종교와 우상숭배를 강력히 차단하였습니다. 시편 115편은 이러한 형상들의 무기력함을 호칭기도의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

사람 손의 작품이라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네. …

그것들을 만드는 자들도 신뢰하는 자들도

모두 그것들과 같네.”(시편 115,4- 6.8)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다음으로 성립된 이슬람교 역시 그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여 당신처럼 되도록 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면모이며, 그리고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십니다. 후에 바오로 사도가 말하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십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는 수많은 신앙의 그림에 영감을 불어넣어 왔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와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상당히 오랜 망설임 끝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를 그린 그림도 나왔습니다. 하느님을 그린 그림은 늘 그 표현 대상과 닮기보다는 닮지 않은 부분을 더 염두에 두면서 그렸습니다. 중세의 화가와 모자이크 예술가는 창조에 관한 연속 그림에서 늘 하느님 아버지 대신 청년의 모습을 하고 계신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감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고, 바오로 사도가 이미 그들에게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결국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하느님 아버지를 세상의 창조주 모습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그림에 대한 기쁨의 시간이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성상 파괴 운동으로 중단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대 교회 안에서 성상 논쟁과 개신교에 의해 촉발되었던 종교개혁 시대에 성상 파괴 운동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인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을 통해서 얻는 기쁨이 더 큽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습니다.

 

한 성화 화가는 그가 그린 성인이 스스로 그 성화 안으로 들어가 그림이 실제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림은 그저 그 그림이 묘사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묘사한 대상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성인을 묘사한 것이 은총을 비는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 21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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