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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라리 내가 대신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21 조회수1,942 추천수29 반대(0) 신고

3월 22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요한 4장 43-54절

 

"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같이 좀 가 주십시오."

 

 

<차라리 내가 대신>

 

우리가 짧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가슴 아픈 일들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아무래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인 듯 합니다.

 

요즘 세월이 팍팍하다보니 요절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만 갑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육신을 벗어버린 본인이야 생계에 대한 부담도 삶의 고뇌도 다 떨쳐버리고 한 마리 산새처럼 훨훨 날아가 버렸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남아있는 식구들, 특별히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은 한 평생 죄인의 마음일 뿐입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분들, 모든 것이 가슴에 사무치겠지만 무엇보다도 밥숟가락 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일이지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여생은 온통 회색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마음 놓고 한번 웃을 수도 없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들, 이제 그만 죄책감 내려놓으시길 빕니다. "인명은 재천”"니다.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루 한 시각도 더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사람 목숨입니다. 먼저 불러간 자식이 이 세상사는 동안 갖은 고통을 겪었으니, 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믿고 힘을 내시길 빕니다.

 

자식과의 사별 못지않게 가슴 아픈 일은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식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하는 일이겠지요. 그 순간 부모의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이겠지요. "차라리 내가 대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파르나움의 고관 역시 상황이 다급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예수님이 갈릴래아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애걸복걸합니다. "제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예수님은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고 한번 뜸을 들이십니다.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고관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속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장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빈정대는 투로, 힐난조로 "인생 그런 식으로 살지 마라"고 나무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관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제발 좀 같이 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같이 가셔서 고관이 보는 앞에서 직접 아들을 고쳐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집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직접 집을 방문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살리고 싶은 고관의 간절한 마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고관의 절대적인 믿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행위가 무당이나 기적장이들의 치유행위와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선 직접 환자가 있는 현장으로 가지요. 그리고 치유를 위한 준비작업을 벌입니다. 굿판을 준비하지요. 치유를 도와주는 잡신도 불러오지요. 별의별 주문도 다 외웁니다. 한 마디로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행위에는 그 모든 요식행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 말씀 한 마디면 끝입니다.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시공을 초월한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치유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치유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언젠가 사라지고 말 육체에 대한 치유보다는 영원히 하느님 앞에 머물게 될 영혼을 위한 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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