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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3) 인사와 인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6 조회수3,896 추천수0

[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3) 인사와 인도

 

 

십자성호를 긋고 난 후 사제는 모인 공동체에게 인사합니다. 보통의 대화는 인사로 시작합니다. 인사로서의 대화는 확실히 좋은 것입니다. 대화 없는 교회 전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찬례 안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이러한 대화는 신앙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기본 입장입니다. 미사를 거행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자에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제든 공동체든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 신자들로서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이 우리 대화의 상대자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대화는 공동체와의 인사로써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인사는 아침, 저녁으로 ‘안녕하십니까?’ 하고 거의 기계적으로 하는 일반 사회생활의 인사와는 전혀 다른 큰 축원을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왜냐하면 미사는 일반 집회 행사가 아니고 교회의 거룩한 전례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맞는 성경 말씀으로 인사합니다.

 

현행 미사통상문에는 ㈎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 “은총과 평화를 내리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등 세 가지 인사 양식과 위령 미사 때는 ㈑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가득히 내리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고유 인사 양식이 있는데 모두 사도 바오로의 편지 첫머리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전례 및 편지 인사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은총이 교우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인사말입니다. 따라서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 인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공동체는 대응인사로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지침은 이 인사가 중요한 신비와 결합되어 있음을 일러줍니다. : “사제는 인사를 하며 모인 공동체에 주님의 현존을 알린다. 이 인사와 백성의 응답으로 함께 모인 교회의 신비가 드러난다.”(50항) 이 집회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인사로 표시합니다.

 

이 같은 의미 부여와 함께 미사경본은 개인적이면서도 따스한 인사말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사제가 조금 긴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면 전례 시작 때 모인 공동체와 자신과의 결속감을 드러내고 자기의 좋은 원의를 표현하고 싶은 시간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이 인사가 온갖 세상사를 언급하거나 우스갯소리로 표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례의 참석자들 중에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온갖 걱정과 고통 또는 슬픔을 안고 자신들의 운명에 위로와 힘을 찾고자 왔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일정한 거리와 객관성을 지키도록 요구됩니다. 

 

그런데 항상 ㈎, ㈏, ㈐ 양식과 같이 규정된 축원을 비는 말로 인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가 과연 이와 같이 고정된 인사의 말을 이해하겠는가? 또 이러한 인사말이 특히 미사경본에서 그대로 읽혀질 때 누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예, 물론 이러한 반문과 비판의 소리에는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인사말이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데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 자체가 이러한 말들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사제의 인사 양식들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사제에게 「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답례를 할 때 이도 역시 「당신 안에도 주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아닙니다. 사제는 이 인사로써 신자들에게 주님께서 여기 계심에 대한 의식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이 인사는 우리에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언해 줍니다.

 

문제는 많은 사제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습관적으로 더 냉정하게는 아무 정성 없이, 타성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1년 365일 하나의 양식만으로 변화도 없이 마냥 읽어 내려간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눌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딴 곳을 보거나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인사가 되겠습니까? 사제가 이러한 인사의 의미를 살리려면 미사의 인사말 정도는 암기하여 교우들을 바라보면서 인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얼굴을 보지도 않고 인사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또한 주어진 세 가지 양식만이라도 변화를 주어 사용한다면, 더 나아가서 전례시기에 따라 다양한 성경의 인사말로, 예를 들면 사순시기에는 “올바른 회개를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여러분과 함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미구에 오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부활시기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등으로 변화를 준다면 신자들의 눈과 귀는 번쩍 뜨일 것이며 아주 자연스레 “또한 사제와 함께” 하고 응답할 것입니다.

 

공의회는 우리가 성체의 표지 외에도 예수님이 현존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다른 외적 표지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그리스도의 현존을 표현하는 외적 표지들이 빵과 포도주뿐이 아니라, 여기 모인 공동체도 바로 그 표지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미사에 모일 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전례행위, 더욱 명확히 말한다면 미사 전례 안에서보다 더 확실하게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얼마나 깨닫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혼란에서 빠져나와 교회에 오며 아마도 그 중 대부분이 서로 알지 못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성당에 들어와서 우선 제대와 감실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현존하시는 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진정 내적으로 집중하고 모여 있어야 하고 주님 친히 우리 중에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말을 할 때 사제는 두 팔을 펼치는데 이는 포옹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입니다.

 

 

미사 인도 및 안내

 

인사에 이어 그날 미사전례의 주제를 알려주는 짧은 인도가 따라 올 수 있습니다.(총지침 50항) 이 인도 부분은 특히 주일, 축일, 성인 축일, 기념일 등과 세례, 혼인, 장례 등의 예식 미사, 특별한 행사 미사 등에 필요할 뿐 아니라, 사목적으로 대단히 유익합니다. 인도하는 말들이 첫 강론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미사 시작 때 친절하게도 그 미사의 지향을 알려 주는데, 미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잔치이자 제사입니다. 따라서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미사를 자기들 미사로 독점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교회의 오랜 관습에 따라 미사 예물을 사제에게 바치고 개별 지향을 신청할 수 있고, 사제는 그 지향에 따라 미사 중에 개별적으로 기도합니다. 미사 예물이란 이렇게 특별히 기도하는 사제에게 감사의 표시로 바치는 감사 예물입니다. 따라서 사제가 미사 지향을 알릴 의무는 없습니다. 주보나 지향판을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미사예물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사목자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제들이 때로는 지나치게 과잉 친절을 베풀고 신자들은 오해에 근거하여 무리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월간빛, 2013년 4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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