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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부님의 딱 한 가지 나쁜 습관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26 조회수6,172 추천수58 반대(0) 신고

6월 27일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요한 19장 31-37절

 

"병사들이 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차례로 꺾고 예수에게 가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신부님의 딱 한 가지 나쁜 습관>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사제로 산 횟수가 점점 늘어감에도 불구하고 사제로서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성화(聖化)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반성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더욱 깊이 뉘우치며, 더욱 강하게 하느님 자비의 손길에 매달리는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서 사제가 성화(聖化)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성화(聖化)된다는 것은 거룩하게 된다는 것, 세상 그 한가운데 살아가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 한 송이 연꽃처럼 산다는 뜻이겠지요. 거룩함의 원천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정화의 길을 걷는다는 것, 그래서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 존재하면서도 또 다른 예수님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사제 성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제 역시 아무리 성덕이 뛰어나고 다방면에 걸쳐 유능하다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매일 육화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매일 영하는 그분의 살과 피로 인해, 매 순간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축복으로 인해 거룩하고 굳센 사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자연스럽게도 저희 부족한 신참내기들의 모범이 되어주신 몇몇 선배 신부님들의 삶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러 신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오랜 세월 주로 시골에서 많이 사목하셨던 신부님의 사연이지요. 신부님께서는 당시 모든 본당 신자들이 한결같이 싫어하는 습관을 한가지 가지고 계셨는데, 아무리 고치라고 부탁드려도 절대로 말을 듣지 않으셔서 신자들 속이 꽤나 상했답니다.

 

신부님의 불치병은 "딱한 사람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병"이었습니다. 한끼 구걸을 위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던 거지들이 많았던 시절, 신부님이 머무시던 사제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필 신부님이 숟가락을 막 들려할 때 거지들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늘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식복사 아주머니께 신부님은 거의 사정하다 시피해서 거지들을 자신의 식탁에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렇게 겸손하게 그렇게 가난하게,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시던 신부님께서 어느 날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셨지요.

 

후임 신부님을 위해 사제관을 정리하던 신자들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의 침실에는 평소 입고 다니시던 옷가지 몇 벌 밖에 없었습니다. 사제관의 거실에는 평소 신부님이 보시던 책들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 한 분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 스페인 신부님은 제 뇌리에 사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각인시켜주셨습니다. 그분은 외국에서 잠시 공부하던 시절, 저희 사제들을 위한 기숙사 공동체 원장신부님이셨지요.

 

일흔이 훨씬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70명이 넘는 저희 다국적 사제들-이국 땅에서 나름대로 고생하던-을 위해 하루 종일 헌신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부님은 언제나 저희들 곁에 계셨습니다. 사무실을 노크할 때마다 한번도 허탕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희보다 먼저 성당에 도착하셔서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한마디라도 유익한 말씀을 전해주기 위해 언제나 공부하셨습니다.

 

형제들이 아플 때, 고민거리가 있을 때, 힘겨워할 때 마치 친아버지처럼 바로 곁에서 지켜주셨고 위로해주셨고, 조용히 도와주셨습니다.

 

너무나도 소탈하고 너무나도 정이 많던 신부님이셨기에 식사시간마다 서로 그분 옆에 앉으려고 경쟁을 했습니다.

 

한 사제가 성화된다는 것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제가 성화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친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 저희 사제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제들이 받았을 때 가장 고맙고 소중한 선물은 다른 무엇에 앞서 기도의 선물입니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열심히 바치는 기도를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특별히 가까이 계시는 신부님들, 인연을 맺었던 신부님들, 병고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움 중에 계시는 신부님들을 위한 열렬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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