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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8 조회수96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가 언젠가 오늘과 같은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오늘 복음을 언급하면서 여기서 첫째는 둘째는 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서수사의 개념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열과 차등을 나타내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서열로 봐서는 동급이지만 그게 병존하는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개념은 마태오복음 최후의 심판에도 나오는 개념과 동일합니다.

 

작은이에게 해 주는 게 예수님 당신께 해드리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씀 말입니다. 실제 이 말씀에 근거해서 그렇게 추론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깊이 묵상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추론하지 않으면 하느님 사랑은 우리가 어렵지만 그 대상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는 노력이라도 해보려고 애써보겠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그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동태복수법과 같은 개념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또 그렇게 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은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수학적으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일하다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흔히들 예전에 오래된 결혼 주례사를 들어보면 부부일심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과 남이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데 일심동체와 같은 상태로 되려면 그냥 단순히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전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단순히 사랑하는 것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자기의 가슴이 타들어가도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할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그렇게 될 때에만이 몸은 분리가 돼 있어도 온전히 한몸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가 하고 여쭤봅니다. 율법학자의 의도는 만약 계명의 우열을 따져봤을 때 그 계명이 무엇이냐고 여쭤본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자기가 맞장구치듯이 동의를 하면서 하나 부연설명을 더하는데 그 내용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 답변에 예수님께서 반응하신 모습을 잘 묵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슬기롭게 대답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어떤 면을 보시고 슬기롭게 대답했다고 하셨는지도 묵상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도 더 능가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하셨으니 천국가는 비결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습니다. 그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상대가 사랑받을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랑도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일방적인 사랑만으로는 서로 사랑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이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정말 하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노력을 해도 그 상대가 오히려 그런 사랑을 줄만큼 행동을 할 때는 사실 잘 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보편적인 사랑을 뛰어넘어야 온전히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역설을 하시니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면 애시당초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렵지만 그렇게 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오늘도 성당에 가고 내일도 성당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의 임계점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유혹만 그런 게 아니고 사랑도 그 임계점을 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 임계점만 한번 넘게 되면 그 다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훨씬 수월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표현을 마지막으로 한번 하자면 남자라면 한 번은 자신의 정열을 다 태워서 여자를 사랑해 본 사람만이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인의 사랑이 아닌 인간 세상의 보편적인 사랑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아량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한 번은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랑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만약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초월할 때는 더 위대한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당연히 천국이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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