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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닥을 기던 사람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12 조회수2,086 추천수27 반대(0) 신고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루가 6장 39-42절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바닥을 기던 사람들>

 

기나긴 추석연휴, 집에 못간 아이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담당 수사님의 아이디어는 계속됩니다. 송편 빚기, 알까기 대회, 윳놀이, 재미있는 비디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이 제일 기뻐하는 것은 "축구 한게임"이었습니다.

 

요즘 그라운드에서의 제 신세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눈에 띄게 기량이 향상되는데, 그래서 패스도 잘되고 손발이 척척 맞는데, 저만 계속 코발, 아니면 개발입니다. 그러다 보니 느는 것은 반칙뿐이지요.

 

어제도 시합 전에는 정정당당하게 스포츠맨십을 살리자고 다짐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불필요한 반칙은 하지 말자고 했었지요.

 

그러나 제 볼을 가로채 가는 한 아이가 너무 괘씸해진 나머지 저도 모르게 아이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이는 깔깔 웃으면서 "에이! 신부님 입으로 반칙하지 말자고 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그럴 수가!"하면서 저를 혼냈습니다.

 

공동체나 한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형제적 교정"입니다. 그러나 솔선수범, 언행일치가 뒷받침되지 않는 형제적 교정, 일방적인 훈계나 가르침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오히려 하지 않느니 못합니다. 역효과가 납니다.

 

이런 점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오늘 복음에서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위선자들이 득실거렸는지 모릅니다. 돈푼이나 만지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서는 갖은 아양을 떨고 아첨을 하던 율법학자들과 사제들이 많았습니다. 아예 철저하게 바닥을 기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기는커녕 부와 권력과 명예를 섬겼던 것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이 약하고 힘없는 백성들 앞에서는 얼마나 거드름을 피웠는지 모릅니다. 폼이란 폼은 있는 대로 다 잡던 그런 이중적인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리 만무합니다. 올바른 사람이라야 찬미가 어울립니다. 그들의 기도와 가르침은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거룩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비로소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결국 말씀 선포자들이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성화(聖化)되지 않는다면 야바위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은 힘을 잃을 것이며 우스개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다시금 겸손하게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의 치명적인 결함인 위선과 이중성, 언행의 불일치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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