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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마르코 12, 28 - 34
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7 조회수86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하고 이르셨다." (12, 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칭찬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12,28) 라고 물었던 율법 학자입니다. 저는 자주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율법 학자의 좋은 질문 덕분에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으뜸이 되고 중심이 되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율법 학자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단순명료합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12, 29~31) 구약과 신약을 약탕기에 넣고 끓여 꽉 짠다면 내려진 약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보약’이라고 표현하듯이, 율법의 613조항을 짜고 또 짜낸다면 결국 사랑으로 요약될 만큼 ‘사랑의 이중 계명’은 구약과 신약의 정수精髓로써, 율법과 예언자들의 참된 뜻이 온전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의 실천 여부가 마지막 심판의 유일한 기준으로 제시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25,40) 그런데 이토록 단순한 계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계명임을 우리는 살면서 깨닫게 됩니다. 사실 세상 살아오면서 우리는 지구 행성 그리고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을 생애 동안 다 만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특히 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 곧 이웃이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성 아오스딩은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람도 있다고 선언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무슨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것이 바로 성 아오스딩의 주된 삶과 영성의 핵심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그리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잘못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악마의 자식을 구분 짓는 유일한 차이는 바로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음에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영성의 움직임을 증거하는 떼제 공동체가 새롭게 불러 큰 반향을 일으킨 노래 Ubi caritas et amor, ubi caritas Deus ibi est.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이는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 궁극적인 분리가 있을 수 없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가능한 가장 깊은 친교와 일치를 가능하게 하며 또한 함께 나누는 사랑은 바로 하느님의 본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존재할 때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며 거기에 ‘영원한 당신 The Eternal Thou’ 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로 요한 1서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4,7)

아무튼 예수님한테서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칭찬을 들은 율법 학자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행하려는 우리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15,9~10) 고 하신 당부대로 언제나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고 주님의 사랑으로 살려고 노력합시다. 그렇게 사노라면 분명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가까이 아니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서에 나오는 율법 학자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12,33) 라고 슬기롭게 대답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았지만, 사실 그가 고백한 바를 실제로 실천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뵙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하고 하느님 아버지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살아간다면, 이런 우리를 보시고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 안에 주님과 함께 머물 뿐만 아니라 칭찬받는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당신께서 가르쳐 주시고 본을 보여주신 사랑의 이중 계명을 저희 또한 실천할 수 있도록 늘 당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여주시고,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 가까이 그리고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만끽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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