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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9(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8 조회수7,031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씁입니다. 12,1-10

형제 여러분,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악한 데데서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ㅁ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1

적수들이 신비적 체험담을 떠벌이고, 바오로는 신비가가 아니라고 비방했기 때문에, 바오로는자랑해야 하는처지에 놓이게 된다. 무엇이든 자랑하는 것은 이로울게 없고 ,더군다나 주님과 당사자간의 사소로운 사건의 신비적 체험을 자랑하는 것은 전혀 이로울 게 없다. 그렇지만 바오로는 자랑을 강요당한다. “현시들은 신비적 시각 체험들이요,“계시들은 신비적 청각 현상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오로는 두 가지 낱말을 구별하지 않고 혼용한다.

 

2

바오로가 눈물 편지57년쯤 썼다고 치자, 그렇다면 2-4절의 무아경 계명은 43년쯤 있었던 일이겠다. 왜 그는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남의 이야기인 양 3인칭을 썼을까? 자아의식을 상실한 무아경의 체험이었기 때문에 3인칭을 썼다는 설, 실명을 감추고 가명을 상용하는 묵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 등 여러 설들이 있으나 아주 쉽게 추론하자. 바오로는 정말 자랑하고 싶지 않은 체험을 만부득이 발설하다 보니,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엮었을 것이다.

무아경: 무아경에서 체험한 일이라. 몸을 지니고 승천했는지, 몸소 땅에다 두고 영만 승천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근동의 옛 사람들은 여러 층층 하늘을 상상했다. 바오로 및 동시대 사람들은 흔히 하늘을 3층으로 상상했으니, 3층은 제일 높은 하늘로서 지존하신 하느님이 현존하는 곳이다.

 

4

여기 낙원은 의인들이 죽어서 또는 의인들이 종말에 부활하여 가는 곳이다. 바오로는 낙원과 제3천을 같은 곳으로 여겼다. 그는 제3천 낙원에서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말, 남들에게 발설해서는 안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루카는 바오로가 자주 이런 체험을 한 신비가였던 것처럼 기록했다.

 

신비적 체험은 되도록 혼자 간직할 일이지 동네방네 선전하고 선동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현시, 무슨 계시를 받았답시고 떠벌이는 자들을 조심하라. 십중팔구 혹세무민하는 사기꾼들이다. 게다가 죄와 벌, 죽음과 말세를 믿천삼아 순박한 그리스도인들을 협박하는 신앙공갈배들이기 일쑤다.

 

7

바오로는 사도로 활동하는 동안 몹쓸 고질병을 앓았다. 7-10절에선 자신의 지병에 대해 신학적 평가를 내린다. 우선 굉장한 계시들을 받았기 때문에 교만해질세라 하느님 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병을 주셨다고 한다. 그 지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내 육신에 가시가 주어졌습니다라 하고 신화적 표현을 빌려서 사탄의 심부름꾼이 나를 주먹으로 때렸다고도 한다. 보다시피 은유적, 신화적으로만 표현한 까닭에 우리로서는 그가 정확히 어떤 지병을 앓았는지 알 길이 없다.

 

8

예수께서 3046일 저녁때 게쎄마니에서 세 차례에 걸쳐 성부께 청원기도를 드렸듯이 바오로도 어느 해였는가는 밝힐 길이 없지만 세 차례나 치유기도를 드렸다. 누구에게? 부활하여 현존하시는 주 예수께. 바오로는 거의 언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바쳤다. 그가 주 예수께 기도를 바친 사례는 드문 편이다.

 

9

주님의 답변은 바오로가 무아경에 들었나. 꿈속에서 들었나? 주님의 말씀만 들었다. 주님의 모습도 보았나?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주님의 모습도 보았나?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9ㄱ절은 바오로 서간집에 수록된, 부활하신 주님의 단 한 가지 말씀이다. “내 은총”,“그 능력”.“그리스도의 능력은 상통하는 개념들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서 주님의 답변을 이해할 일이다. 그 뜻을 간추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농력은 상통하는 개념들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서 주님의 답변을 이해할 일이다. 그 뜻을 간추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약질 바오로에게 넉넉히 작용해서 그로 하여금 사도직을 힘차게 수행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환원하면 사도의 지병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한껏 능력을 발휘하시는 현주소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풀이하여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사도가 다시는 자신의 지병을 치유해 주십사는 기도를 바치지 않고, 그 대신 기꺼이 자신의 약점을 자랑할밖에.

 

 

 

 

 

복음<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에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 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고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닥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차려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져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24)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상징어 역시 어룩에서 옮겨썼다. 마몬은 아람어로 재물 또는 돈을 뜻한다. 큰 힘을 지닌 까닭에 재력 또는 금력이라 한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마력을 발휘하거나 역신으로 둔갑하여 인간을 온통 지배한다. 그러니 마몬은 섬길 성전이 아니고 부릴 종놈에 불과하다. 마몬에게 압도될세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전적으로 포기하라고 명하셨고 일반 청중에게는 기꺼이 빈자를 도우라고 촉구하셨다.

 

26

마태오에는 하늘의 새들”, 루카 12.24에는 까마귀들

 

28

루카 12,27에서는 그냥 백합꽃들”, 마태오에서는 들의 백합꽃들”, 팔레스티나 들판에 우리네 백합꽃은 없다. 4~5월에 팔레스티나 들판에 활짝 피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일컬어 백합꽃이라 했을 것이다.

 

33

그분의 의로움은 분명히 마태오의 가필인데, 하느님의 뜻 실천을 가리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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