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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7 조회수1,548 추천수2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재의 수요일 -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오늘은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 있으면서 후회되었던 일들이 여러 개 떠올랐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하고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몸무게가 많이 늘고 몇 년 동안 공을 차보지도 않았으면서 교구 신부님들 체육대회에서 옛날 생각하며 공격수를 하였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많은 신부님들 앞에서 창피만 당하였습니다.

한 번은 전에 있던 본당의 축구팀이 저를 만나기를 원했는데 제가 너무 피곤하여 잠을 조금 더 자느라고 약속에 늦고 말았습니다. 그 날이 주일이라 여러 분들이 기다리다 먼저 미사에 가시고 단 몇 명만 간단히 인사하고 그 분들도 미사에 가셨습니다. 함께 공 차던 정이 있어서 저를 만나러 왔던 것인데 제가 조금 더 쉬려고 하다가 여러 명을 바람 맞춘 꼴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다시 한국을 떠나니 후회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이미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았던 것들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하게 될까?’

유수처럼 지나버리는 이 세상에서도 이렇게 후회가 많은데 영원한 세상에서는 모두가 함께 나의 삶을 바라보게 될 것인데 이 세상에서 잘못했던 한 가지 한 가지가 더욱 뼈아프게 후회될 것 같습니다.

 

매미의 알에서 나온 유충은 3년에서 어떤 것은 17년이 넘는 세월을 땅 속에서 지냅니다. 그러다가 성충, 즉 매미로 우화한 후에도 1달 이상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매미들은 보통 7년 정도 땅에 있다가 매미가 되어서는 10일 정도 지내다 죽습니다. 예수님도 30년 숨어 사시다가 3년 짧게 사셨습니다. 사순의 시작도 어쩌면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오랜 준비기간일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 경기 하나를 위해서 4년을 고생하는 것처럼, 만약 저도 여기 있었던 3년 동안 운동을 꾸준히 했으면 그렇게 창피스런 축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육체를 이길 수 있었다면 저를 기다리셨던 분들에게 실망이 아닌 기쁨을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보여주는 순간은 짧지만 그 순간을 위해 애쓴 노력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 미사에선 신부님께서 머리에 재를 뿌리시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라고 합니다.

본래 인간이 흙에서 났지만 흙으로 돌아갈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첫 조상이 죄를 짓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벌이 바로 땅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썩는 이유는 바로 그 육체가 죄로 버무려졌기 때문입니다.

매미의 유충이 매미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땅 속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또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서 실을 뽑아 누에고치가 되어 어둠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도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선 사순절에 행해야 할 그 유명한 세 가지 권고사항이 나옵니다. 바로 “기도, 단식, 자선”입니다. 인간이 죽여야 할 것은 세 가지 죄의 뿌리, 즉 “교만, 성욕, 돈”입니다. 즉, ‘기도’는 ‘겸손’의 표지이고 ‘단식’은 ‘육체’를 이기기 위한 것이며 ‘자선’은 ‘돈’의 욕심을 이기는 행위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기도 할 수 없고 육적인 사람이 단식을 좋아할 이유가 없으며 욕심 많은 사람이 자선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나쁜 원죄적 경향을 줄이기 위해서 조금 더 기도하고,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 것을 땅에 묻고 다시 태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죽였을 때에야 새로 태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순은 단순히 극기하고 기도하고 자선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죽여나감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즉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신을 죽여 땅에 묻지 않으면 부활이 오더라도 어떤 부활의 기쁨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체험하지 않는 죽음과 부활의 신비는 항상 남의 것으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순 없는 부활도 없고 십자가 없는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30년 동안이나 준비기간을 가지셨지만 다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을 단식하시며 교만과 육체와 세상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 이후에야 후회 없는, 아니 더 나아가 영원히 칭송받을 삶을 사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짧더라도 가치 있게 살기 위해 사순을 잘 보낼 결심을 하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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