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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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9일 목요일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야 저녁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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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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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성가 291번 사도 성 베드로와 바오로 영성체 성가 165번 주의 잔치
예물준비 성가 18번 주님을 부르던 날 166번 생명의 양식
파견 성가 290번 복음을 전한 사도들 (2~절)

오늘 전례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본이름은 시몬이었지만 주님에게서 게파, 곧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복음에 소개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소박하고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함으로써 칭찬을 받기도 하고, 주님의 수난을 반대하다 가‘사탄아, 물러가라.’는 심한 꾸중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열두 제자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도입니다. 타르소에서 태어난 그는 열성적인 바리사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습니다. 스테파노 부제를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 있던 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 개종하여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들에 보낸 많은 서한이 오늘날 성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67년경 로마에서 네로 폭정 때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분의 시신은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입당송

주님, 사도 베드로와 이민족들의 스승 바오로는 주님의 계명을 저희에게 가르쳤나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주 하느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로 교회에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를 놓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를 도와주시고, 저희가 영원한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전의 문 앞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고쳐 줍니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개종하기 전에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세 번이나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을 부탁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복음).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9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9(18),2-3.4-5ㄴ(◎ 5ㄱ)
◎ 그 소리는 온 땅으로 퍼져 나가도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도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도다. ◎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도다. ◎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1,11-20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16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21,17ㄹ
◎ 알렐루야.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시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이 예물을 주님께 바치오니, 저희의 공로로는 감히 바라지 못하는 자비를 베푸시어,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요한 21,15.17 참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시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주님의 양을 돌보려면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먼저 필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 양을 돌보는 일은 자신이 위험할 때는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삯꾼의 일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또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거듭 물으시면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행동에서가 아니라 마음과 입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로 아는 일에서 마음으로 느끼는 일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더 먼 여행은 마음에서 팔다리까지일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느끼지만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먼 여행을 지금부터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 팔다리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비추어 주신 진리를 굳건히 보존하게 하시고, 저희가 천상 성사로 굳세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