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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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6일 주일

[(녹) 연중 제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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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44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 영성체 성가 172번 그리스도의 영혼
예물준비 성가 215번 영원하신 성부 171번 오 거룩한 생명의 샘
파견 성가 436번 주 날개 밑

오늘 전례

<7월 5일에 대축일 미사를 드린 곳에서는 연중 주일 미사를 드린다.>

입당송

시편 48(47),10-11 참조
주 하느님, 저희가 주님 궁전에서 주님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주님 이름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주님의 오른손이 의로움으로 가득하나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즈카르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기쁨을 노래한다. 메시아가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언제나 평화를 가져오시는 분이다. 그분의 통치는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늘 기다려야 한다(제1독서).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은 하느님의 큰 은총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영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죽을 몸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제2독서). “철부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지혜를 감추셨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당신의 능력을 모두 맡기셨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율법에 얽매여 힘겹게 사는 이들이다(복음).

제1독서

<보라, 너의 임금님이 겸손한 모습으로 너에게 오신다.>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9-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0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1-2.8-9.10-11.13ㄷ-14(◎ 1 참조)
◎ 저의 임금이신 주 하느님, 영원히 주님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 저의 임금이신 주 하느님, 주님을 들어 높이나이다. 영영세세 주님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주님을 찬미하고, 영영세세 주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도다. ◎
○ 주님, 주님의 모든 조물이 주님을 찬송하고, 주님께 충실한 이들이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주님 나라의 영광을 말하고, 주님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주님께서는 그 모든 말씀에 참되시고, 당신의 모든 조물에게 성실하시도다. 주님께서는 넘어지는 이 누구나 붙드시고, 꺾인 이 누구나 일으켜 세우시도다. ◎

제2독서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9.11-13
형제 여러분, 9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우리에게 영혼의 안식과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바람을 아룁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이 나라 정치인들이 당리당략과 이기적인 야심에서 벗어나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닫고, 국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봉사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
3.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비오니, 그들이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더욱 의지하며 희망을 찾게 하시고, 그 가족들에게도 용기와 건강을 주시어 어려움을 힘차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하소서. ◎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저희에게 사랑과 용기를 심어 주시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럼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 교만한 자들을 내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 구원을 보이신 주님, 자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이 기도와, 아울러 청하지 못하는 기도까지도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연중 주일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시편 34(33),9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피신하는 사람!

영성체 후 묵상

사람은 누구나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께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갈 수 있는 길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전하면 그분께서는 힘과 은총을 주십니다. 삶의 멍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주님의 가르침을 청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충만히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멍에는 소나 말의 목덜미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기입니다. 그곳에 줄을 달아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합니다. 소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것이지요. 그러나 멍에가 있어야 소를 제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 멍에가 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귀찮은 그 무엇’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게 인생살이입니다. 일생 지고 가야 하는 짐들이지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이끌어 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가벼운 멍에가 있을는지요? 멍에는 본질적으로 귀찮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은총임을 아는 데에는 숱한 좌절과 일어섬이 요구됩니다.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 안에 머물면 결국은 고통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에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그때가 언제쯤 될는지요? 기다려야 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주님의 이 말씀은 어리광 부리고 투정 부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아픔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 봅니다.
우리는 가끔 잘못 생각합니다. 이 사고 때문에, 이 일 때문에 힘들고 불행한 미래를 살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미래는 주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