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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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1일 주일

[(녹) 연중 제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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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시편 86(85),3.5 참조
주님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주님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주님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시나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아 주시고 활기찬 믿음을 주시어, 저희 안에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주님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이 비웃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다짐해도 주님의 말씀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제1독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주님 앞에 제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현실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늘 주님의 뜻을 찾으며 살아야 한다(제2독서).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말린다. 인간적 판단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꾸중을 듣는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치욕 거리만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7-9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 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3(62),2.3-4.5-6.8-9(◎ 2ㄴ)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이 주님을 목말라하나이다.
○ 주 하느님, 주님은 저의 하느님, 저는 주님을 찾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주님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
○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이렇듯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주님의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
○ 이렇듯 제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 이름 부르며 저의 두 손 들어 올리오리다. 제 영혼이 비계와 기름을 먹은 듯 배불러, 환호하는 입술로 제 입이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
○ 정녕 주님께서 제게 도움이 되셨으니, 주님 날개 그늘 아래서 제가 환호하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 오른손이 저를 붙들어 주시나이다. ◎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1-2
1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에페 1,17-18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1-27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悶“?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자신의 십자가를 충실히 받아들이며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가 나누고 섬기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깨달아, 굶주리고 헐벗고 약한 이들과 늘 함께하며 기쁨과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세상을 굽어 살피시어 세계의 모든 지도자가 자신들의 역할을 올바로 깨닫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함으로써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
3. 부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혼인성사의 은혜로 결합된 부부들이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더욱더 일치하게 하시고, 그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저희가 더욱 큰 믿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흠 없이 살아가게 하소서. ◎
+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라 충실히 살아가며 드리는 자녀들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이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안에서 완성되게 하소서. 우리 주…….
<연중 주일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시편 31(30),20
주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영성체 후 묵상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그 무엇’이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 십자가의 정체입니다. 그 누구도 기다렸다는 듯이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질 수 있는 힘과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기도를 바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성사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드러내던 베드로 사도가 혼이 나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베드로가 몰랐기로서니 “사탄”이란 표현은 너무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단호한 말씀 속에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적 감정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면서 베드로는 간섭하였습니다. 인간적 애정으로 스승님의 앞날에 참견하였습니다. 동기는 순수했지만 베드로가 나설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인간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 주님께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면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은 단지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는 수단이라는 착각입니다. 점치고 굿하는 기복 신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인지요? 주님께서 중심이 되는 믿음인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믿음인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