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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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5일 목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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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36번 주 날개 밑 영성체 성가 176번 믿음 소망 사랑
예물준비 성가 219번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178번 성체 앞에
파견 성가 452번 위험에 빠진 자에게

오늘 전례

<연중 제29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주 하느님,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겠기에, 제가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주님의 귀를 기울이시어 제 말씀을 들어 주소서. 주님의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주님의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정성스럽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코헬렛은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허무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다는 의미다.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선언이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본 사람의 이야기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한다. 의인을 죽인 죄책감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 호기심 때문이다. 하지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헤로데에게 믿음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오지 않으셨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0(89),3-4.5-6.12-13.14와 17(◎ 1)
◎ 주님, 주님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주님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 년도 주님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나이다. ◎
○ 주님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나이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가나이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주님의 자애로 저희를 배불리소서. 저희의 모든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님 저희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저희에게 잘되게 하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되게 하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제사를 봉헌하게 하시고, 이 거룩한 미사로 주님의 은총을 받아 깨끗하여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시니,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하시고, 굶주릴 때 그들을 살리시기 위함이로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자주 천상 잔치에 참여하여, 현세의 은혜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워 알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 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때 나온 답변 중의 하나가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마르 8,28 참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 임금은 자신이 요한을 죽였다며,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다시 살아난 요한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로데는 율법에 어긋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요한을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고는 아내의 간계에 넘어가 요한을 죽입니다. 의로운 사람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방관했습니다. 예수님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처형을 묵인하는 빌라도와 닮았습니다. 이러한 지도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명분과 체면의 틀을 깨지 못하는 지도자들입니다.
내일의 복음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였습니다(루카 9,20 참조). 그러기에 예수님을 온몸으로 추종합니다. 호기심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명분과 체면이 아니라 열정과 희망으로 함께합니다.
이제 정치는 민중의 것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의로운 지도자들도 많아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헤로데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나 베드로와 같은 지도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