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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월요일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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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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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성가 51번 주 나의 목자되시니 영성체 성가 177번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
예물준비 성가 213번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파견 성가 29번 주예수 따르기로

오늘 전례

<연중 제8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8(17),19-20 참조
주님께서 나에게 의지가 되어 주셨도다. 내가 주님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곳으로 이끌어 내시어 나를 구하셨도다.

본기도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사제는 하느님을 섬기도록 지정된 사람이다. 사제만이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이런 영예는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대사제가 되시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일이었다(제1독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묻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도 단식하게 될 것이라 하신다. 당신의 죽음과 부활 뒤에는 단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시대가 되었으니 예수님을 따르라는 가르침이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이로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
○ 주님께서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으로부터 뻗쳐 주시리니, 당신께서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다스리소서. ◎
○ 당신 진군의 날에 당신 백성이 자원하리이다. 거룩한 치장 속에 새벽의 품에서부터 젊음의 이슬이 당신의 것이오이다. ◎
○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 알렐루야.
○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도다.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주님께 봉헌할 예물을 마련해 주시고 봉헌된 예물은 저희 정성으로 돌리시니, 저희 공로를 더해 주는 이 제사로 저희가 기쁨을 상으로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12),6 참조
제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주님께 노래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구원의 선물로 이 세상에서 저희를 길러 주시니, 이 성체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주님과 완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경주용 말’을 비행기로 실어 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행 내내 적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고, 바닥에는 배설물 흡수제가 깔렸다고 합니다. 말들에게 쾌적한 비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용이 꽤 들었을 것입니다. 경주용 말들은 이렇듯 귀한 대??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혹사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입니다.
경주용 말은 옆에서 지키지 않으면 자꾸 먹는다고 합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채찍을 맞으면서 ‘뛰고 또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임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먹는 것으로 해소하려 든다는 겁니다. 화려한 경주용 말이지만 이렇듯 비참한 구석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했습니다. 하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단식은 수단입니다. 은총을 얻는 방법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라고 하십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단식에 임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단식 자체’를 맹종하고 강요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랑을 위한 믿음이지 고통을 위한 믿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신앙인들은 경주용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치 주간의 묵상 - 2일째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우리가 즐겨 쓰는 성경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현실 앞에서 하루빨리 하느님께서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폭력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치유되지 않은 분열의 결과이며, 우리 삶의 참토대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적 오만의 결과입니다.
일치 주간 2일째인 오늘은 전쟁과 폭력으로 분열된 이 세상에 맞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과연 이 땅에 전쟁과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신”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폭력 원리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십자가의 역설의 신비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선포할 때 온갖 형태의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에게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용기와 희망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으시는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 온 인류의 일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신 주님께 이기주의와 교만, 허영과 분노로 일그러진 저희 인간 본성을 바치나이다. 온갖 폭력과 분노와 증오로 고통 받는 억눌린 이들, 그릇된 신념과 이념 대결의 희생자들을 저버리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백성을 자애로이 굽어보시고 돌보시어, 저희가 주님 창조 질서에 없어서는 아니 될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저희 인간의 정의보다는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협력하며, 이웃의 어깨 위에 저희 십자가를 지우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그들을 돕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저희가 저희 원수들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