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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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화요일

[(녹) 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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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58번 이몸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 영성체 성가 180번 주님의 작은 그릇
예물준비 성가 215번 영원하신 성부 181번 신비로운 몸과 피
파견 성가 446번 우리는 주의 사랑을

오늘 전례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또는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기념
<연중 제15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7(16),15 참조
저는 의로움으로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보고 흡족하리이다.

본기도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보이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이름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끝까지 기다린다. “나는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번성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브라함이었기에 주님의 축복을 계속 받았다(제1독서). 주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비벼 먹었다. 무심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기에 ‘해서는 안 될 추수 행위’로 간주되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거슬렀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설득하신다. 그분의 넓은 마음이다(복음).

제1독서

<이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微?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2.4-5.9와 10ㄷ(◎ 5ㄴ)
◎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약을 언제나 기억하시도다.
○ 내 마음 다하여 주님을 찬송하리라, 올곧은 이들의 모임에서, 집회에서. 주님께서 하신 일들 크기도 하시어,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도다. ◎
○ 당신의 기적들을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시도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당신의 계약을 언제나 기억하시 도다. ◎
○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보내시고, 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도다. 주님에 대한 찬양은 영원히 존속하도다. ◎

복음 환호송

에페 1,17-18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예물을 굽어보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에게 성덕을 더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84(83),4-5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주님의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마련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그곳에 새끼들을 치나이다. 주님의 집에 사는 이들은 행복하리니, 그들은 늘 주님을 찬양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선물을 받고 비오니, 저희가 성체를 자주 모시어 나날이 구원의 효과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많은 교우들이 주일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에 불참하면 고해성사를 봐야 하고,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수동적인 자세입니다. ‘주일날 미사 참여’가 의무 규정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신앙생활의 깊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주일날 ‘미사 참여’는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최저 기준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참여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면 주일을 거룩히 지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사람을 위한 봉사’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미사 참여도 그런 지향으로 한다면 더 깊은 은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주일을 ‘법적인 의무’로만 해석해 왔습니다. 그래서 ‘기쁜 주일’이 오히려 ‘짐스러운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못해 미사에 참여한다면 살아 있는 은총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일치 주간의 묵상 - 3일째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율법의 준수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토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의 본래 의미를 잊고 율법 자체를 신성시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탓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분명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3일째인 오늘은 세상의 논리로 복음의 논리를 폄하하려는 온갖 형태의 경제적 불의와 가난에 맞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상기시킵니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경제 체제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재화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웃들과 나누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인생의 목표이자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의 탐욕에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율법 정신보다 율법 자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의 축복 역시 하느님께로 되돌릴 수 있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이를 외면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에 매달린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곳도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가는 곳도 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폭력과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도 있지만, 전쟁과 폭력 때문에 강제로 자기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도 있습니다.
자비의 하느님, 저희가 돈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느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저희가 생명을 얻고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