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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7일 화요일

[(녹) 연중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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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성가 517번 내가 절망 속에 영성체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
예물준비 성가 219번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153번 오소서 주 예수여
파견 성가 440번 주님의 발자국 아는가

오늘 전례

<연중 제11주일 기도문>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기념

입당송

시편 27(26),7.9
들으소서, 주님,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저를 버리지 마소서.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거룩한 은총의 힘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많은 제사를 지냈다. 속죄제는 수시로 지냈다. 율법 자체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돌아가심으로써 인류 전체를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이다(제1독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찾아와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뜻밖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인간적인 혈연관계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2ㄱㄴ과 4ㄱㄴ.7-8ㄴ.10.11(◎ 8ㄴ과 9ㄱ 참조)
◎주님, 보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셨도다. 내 입에 새로운 노래를, 우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담아 주셨도다. ◎
○주님께서는 희생과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주님께서는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주님께서는 알고 계시나이다. ◎
○주님의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주님의 성실과 구원을 이야기하며, 주님의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알렐루야.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하느님, 인류에게 주신 빵과 포도주로 성사를 세우시어 저희를 기르시고 새롭게 하시니, 이 예물이 저희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제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7(26),4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로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잔치에서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친교를 이루어,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친척들이 달갑지 않는 듯 말씀이 냉정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얼핏 들으면 매몰차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귀찮아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암시였을 뿐입니다. 인간적 혈연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친척들은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모습만’ 찾고 매달리면 언제나 섭섭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학연과 지연과 인연은 큰 몫을 차지합니다. 서로 편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승화시켜 ‘주님 안에서의 만남’으로 맺어지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서로 베푸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친숙해지면 ‘주는 것은 멈추고’ 받으려고만 합니다. 받았던 것은 잊어버린 채 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봉헌을 통해 성장합니다. 어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러운 관계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면 아름다운 봉헌이 됩니다. 바치면 깨달음을 주십니다. 바칠수록 ‘그분께 사로잡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