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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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8일 수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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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36번 주 날개 밑 영성체 성가 496번 주님은 우리 사랑하셨네
예물준비 성가 216번 십자가에 제헌되신 182번 신묘하온 이 영적
파견 성가 480번 믿음으로

오늘 전례

<연중 제29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7(16),6.8
주 하느님,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겠기에, 제가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주님의 귀를 기울이시어 제 말씀을 들어 주소서. 주님의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주님의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며, 언제나 정성스럽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밤낮으로 비가 내려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사십 일이 지나자 비가 그쳤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내 보았다. 그 뒤에는 비둘기를 내보내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땅에 발을 디딘 노아의 가족은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쳤다(제1독서). 성경에는 눈먼 이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눈먼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오늘날에도 눈먼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식에 눈멀고 돈과 재물에 눈이 멀어 앞날을 못 보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복음).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6(115),12-13.14-15.18-19ㄴ(◎ 17ㄱ)
◎ 주님, 주님께 감사의 제물을 바치나이다.
○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리라. ◎
○ 주님께 나의 서원들을 채워 드리리라, 주님의 모든 백성 앞에서.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의 눈에는 소중하도다. ◎
○ 주님께 나의 서원들을 채워 드리리라, 주님의 모든 백성 앞에서,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

복음 환호송

에페 1,17-18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22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주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오니, 저희의 온갖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시니,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하시고, 굶주릴 때 그들을 살리시기 위함이로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의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스승이 제자에게 돌덩어리 두 개를 주며 가격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는 채소 가게 주인에게 “얼마면 이것을 사겠소?” 하고 묻습니다. 대답은 감자 두 개였습니다. 다시 정육점에 가서 묻습니다. “얼마면 사겠소?” 대답은 역시 고기 두 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금은방을 찾아갑니다. “얼마면 사겠소?” 주인은 돌덩이를 보더니 숨이 넘어갑니다. “가진 것을 모두 주겠소. 제게 파시오!” 돌아온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돌덩이는 엄청난 보석의 원석이었던 겁니다. 같은 보석이지만 가격은 달랐습니다. 알아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보물을 안고 삽니다. ‘가족’이라는 보물과 함께 삽니다. 얼마만큼 가치를 깨닫고 있는지요? 모르면 ‘눈먼 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눈이 먼 채 살아가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자식에 눈이 멀고, 재물에 눈이 멀고, 명예와 권력 때문에 앞날을 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눈먼 이를 눈뜨게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절제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분수를 잊기에 삶의 리듬마저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에도 손을 얹어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