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날 오늘 다음날

2009년 2월 22일 주일

[(녹) 연중 제7주일]

TV매일미사 업로드 준비중 입니다.

오늘 전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없음

[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에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로 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지붕을 뚫고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달라 지붕을 쉽게 걷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용기를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입당송

시편 13(12),6
주님, 저는 주님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주님의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제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주님께 노래하오리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령께 귀를 기울이게 하시어, 주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늘 새롭다. 그러니 옛날의 일만을 기억해선 안 된다. 그분은 사막에서도 강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번제를 올려야 한다. 희생 제물을 바치며 찬양을 드려야 한다(제1독서). 우리를 부르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분께는 늘 진실만이 있다. 그러므로 “예!” 할 것은 반드시 “예!”라고 응답해야 한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우들을 위로하고 있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다. 가족들은 병자를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가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들의 용기를 주님께서 갚아 주신 것이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모든 이가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나를 위하여 너의 악행들을 씻어 주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3,18-19.21-22.24ㄷ-2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8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21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22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싫증을 내었다.
24 너는 도리어 너의 죄로 나를 괴롭히고, 너의 죄악으로 나를 싫증 나게 만들었다. 25 나, 바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너의 악행들을 씻어 주는 이, 내가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1(40),2-3.4-5.13-14(◎ 5ㄴ)
◎ 주님,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께 죄를 지었나이다.
○ 행복하여라, 가련한 이를 돌보아 주는 이! 불행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구하시리라. 주님께서 그를 보살피고 살려 주시어, 그가 땅에서 복을 받으리라. 그를 원수들의 탐욕에 내주지 않으시리라. ◎
○ 주님께서 그를 병상에서 받쳐 주시고, 그가 아플 때 모든 고통을 없애시리라. 저는 아뢰었나이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께 죄를 지 었나이다.” ◎
○ 주님께서는 제가 온전하도록 붙드시고, 저를 주님 면전에 영원히 세워 주시나이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아멘, 아멘! ◎

제2독서

<예수님은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18-22
형제 여러분, 18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루카 4,18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너그러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바람을 간절히 청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의 의로움을 실천하여 이 세상에서 빛이 되고자 하는 교회를 돌보아 주시어, 교회가 세상의 온갖 욕심과 부조리에 휩쓸리지 않고 참생명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경제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경제 발전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지혜를 주시어, 어려운 이 현실을 슬기롭게 이겨 내고 힘을 얻어, 밝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게 하 소서. ◎
3.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비오니, 그들이 암과 맞서 싸우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께 의지하며 고통을 잘 이겨 내게 하시고, 그 가족 들과도 함께하시어 그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위로와 사랑의 은총을 베 풀어 주소서. ◎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본당의 모든 신자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배려하며, 서로의 아픔을 껴안아 주고, 어려운 일은 마음을 다해 서로 돕게 하시어, 이웃과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
+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오직 주님의 자비만을 믿고 의지하며 드리는 이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연중 주일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몸과 마음이 마비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돈과 재물에 매달리다 보니 영적 생활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어 영혼의 목마름을 풀어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굳어 있는 영혼을 위로해 주시길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저희가 성체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적극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보냈던 겁니다.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봤을까요? 더러는 웃었을 것이고,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용기를 받아 주십니다. 그분의 넓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못마땅해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죄를 용서해 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한 마음도 받아 주십니다. 모두에게 애정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주변을 의식했더라면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용기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결정입니다.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의 판단에 구애된다면 ‘참된 용기’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시선만을 생각해야 참된 용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믿지 못했고 주위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따집니다. 신앙 안에서 따진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주님 앞에서까지 따져야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법보다 위에 있습니다. 사랑은 무질서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따지지 않고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