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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3일 월요일

[(백)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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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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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성가 132번 감사의 송가를 영성체 성가 168번 오묘하온 성체
예물준비 성가 218번 주여 당신 종이 여기 167번 생명이신 천상 양식
164번 떡과 술의 형상에
파견 성가 131번 찬미 노래 드리자

오늘 전례

부활 시기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가장 큰 축일이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3세기까지 교회의 축일은 부활 축일뿐이었다.
부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이다. 교회는 예전부터 이 시기를 은총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로 받아들여 왔다. 교회 초창기의 부활 축제는 부활 성야에서 그다음 날 ‘해가 질 때’까지였다. 그러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다시 부활을 기념하는 6주 동안의 전례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부활 시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날짜는 해마다 달라진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 역시 파스카 식사였다. 그리고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니산 달’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들은 ‘니산 달’을 한 해의 첫 달(1월)로 생각했고, 비로소 밭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동방 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파스카 축제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파스카 축제일 ‘다음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3월 20일)을 지내고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은 이 계산법에 따라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성 마르티노 1세 교황 순교자 기념 없음

입당송

탈출 13,5.9 참조
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언제나 새로운 자녀들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니, 저희가 신앙으로 받은 세례의 신비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능력을 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게 했지만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알리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힘이 실려 있다. 확실한 믿음을 전하기 때문이다(제1독서).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의 정성을 주님께서 받아 주신 것이다. 하지만 부활을 목격했던 경비병들은 이용당한다.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주문하고 있다. 어디에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있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22-33
14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부속가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이날 축제를 거행하는 곳에서는 신경을 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제사를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이름을 믿고 세례로 새로 나게 된 저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소서. 우리 주 …….
<부활 감사송 1: “이날에” 참조>
<제1 감사 기도에서는 부활 고유 성인 기도와 Hanc igitur(“주님, 저희 봉사자들과…….”)>

영성체송

로마 6,9 참조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의 은총을 저희 마음에 가득 채워 주시어, 영원한 구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저희가 거룩한 삶으로 주님의 선물을 합당히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파견 때에 “알렐루야.”를 두 번 덧붙인다.>

오늘의 묵상

줄이 짧은 두레박으로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습니다.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 있습니다. 줄이 짧으면 당연히 줄을 늘이거나 다른 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지와 게으름 때문입니다.
복음의 경비병들은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천사들이 무덤의 돌을 치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상부에 보고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조작을 시도합니다.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도록 합니다.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하여 비겁한 행동을 지시하고 있는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현실의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신 업적이 이렇듯 엉뚱한 사건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닙니다. 지나가 버린 ‘사건’도 아닙니다. 부활은 믿음이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셔야 가까이 갈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력 없이 은총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