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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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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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성 다마소 1세 교황 기념

입당송

보라, 주님이 영화롭게 내려오시리니,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 평화를 베푸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리라.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의 백성이 다시 오실 외아드님을 깨어 기다리며, 저희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등불을 밝혀 들고 깨어 있다가 그분을 영접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말씀의 초대

주님의 이끄심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리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틈만 나면 엉뚱한 길로 나아갔다. 그때마다 시련이 닥쳤고 백성들은 흩어졌다. 이제라도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주님의 인도를 받을 것이다.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들 것이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외면했다. 백성들은 따르고 있었지만, 조상들의 전통을 왜곡한다고 비난했다. 예수님께도 같은 불평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의 유치한 처신을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신다. 장터의 아이들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요한 8,12 참조)
<선창자가 후렴을 선창하면 교우들은 후렴을 받아 반복한다.>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이어지는 시편은 선창자가 하고 교우들은 후렴을 반복한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 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오시니 마중 나가자. 주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비천한 저희가 드리는 기도와 제물을 굽어보시고, 아무런 공덕이 없는 저희를 너그러이 보호하시며 도와주소서. 우리 주 …….
<대림 감사송 1: 194면 참조>

영성체송

필리 3,20-21 참조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꾸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에게 지상 것을 슬기롭게 활용하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공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오해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복음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편견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단식하며 사람들을 가르치자, ‘마귀 들린 선생’이라며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시자,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을 냅니다.
오늘날에도 편견은 여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속도’와 연관된 일입니다. 무엇이든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그리하여 단번에 화끈하게 끝나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교세를 확장해야 하고, ‘미사도 빨리’, ‘회합도 빨리’, 강론도 짧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빠른 것은 그저 ‘빠른 것일 뿐’입니다. 느린 것도 그저 ‘느린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삶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것이 빠르기만 하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빨리 하는 습관보다 ‘즐겁게 하는 습관’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즉흥 병’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물결입니다. 한 번쯤 멈춰 설 줄 알아야 합니다. 바리사이들도 편견을 깨고 조금만 천천히 다가갔더라면 예수님을 알아봤을 것입니다. 너무 서둘렀기에 가까이 계신 구세주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