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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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5일 금요일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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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쪽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심으로 주님께 자신을 봉헌할 것을 결심하며 평생을 동정으로 살았다. 성녀는 박해자들에게 붙잡혀 여러 번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끝끝내 신앙을 증언하다가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아가타 성녀에 대한 신심은 초기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순결한 희생, 정결한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본기도

주님, 복된 아가타는 동정과 순교의 영광으로 교회를 빛냈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다윗은 선택된 인물이다. 그는 소년이었을 때 이미 골리앗을 물리쳤다. 주님께서 함께 계셨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다윗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은혜롭게 여기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의로운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헤로데는 자신의 잘못을 꾸짖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는데, 부정한 아내의 계략에 넘어가 그를 죽게 했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다윗은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였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47,2-11
2 친교 제물에서 굳기름을 따로 떼어 놓듯,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되었다.
3 다윗은 염소 새끼들과 놀듯 사자들과 놀고, 양들 가운데 어린 양과 놀듯 곰과 놀았다. 4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거인을 죽여 백성의 수치를 씻어 주지 않았더냐? 그는 손을 쳐들어 돌팔매로 골리앗의 교만을 꺾었다. 5 그가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호소하여, 주님께서 그의 오른팔에 힘을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다윗은 싸움에 능한 장수를 쓰러뜨려 백성의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6 그리하여 사람들은 만 명을 물리친 다윗을 칭송하였고, 그가 영화로운 왕관을 쓰게 되었을 때 주님의 복을 받은 그를 찬미하였다.
7 사실 그는 에워싼 원수들을 무찔렀고, 필리스티아 군대를 없애 버렸으며, 오늘까지 그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8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9 그는 제단 앞에 성가대를 자리 잡게 하여, 그들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가락을 노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마다 자신들의 노래로 찬미하였다. 10 다윗은 축제를 화려하게 벌였고, 그 시기를 완벽하게 정리하였으며,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고, 그 찬미가 이른 아침부터 성소에 울려 퍼지게 하였다.
11 주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힘을 대대로 들어 높이셨으며, 그에게 왕권의 계약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8(17),31.47과 50.51(◎ 47ㄴㄷ 참조)
<선창자가 후렴을 선창하면 교우들은 후렴을 받아 반복한다.>
◎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이어지는 시편은 선창자가 하고 교우들은 후렴을 반복한다.>
○ 하느님의 길은 결백하고 주님의 말씀은 순수하며, 당신께 피신하는 모든 이에게 당신은 방패가 되신다. ◎
○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 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
○ 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 당신의 메시아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애를 베푸신다. ◎

복음 환호송

루카 8,15 참조
◎ 알렐루야.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가타의 생명의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의 축일을 맞이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묵시 7,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가타에게 동정의 월계관과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억울합니다. 바른말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역사 안에 수없이 많습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한마디’ 했다가 불이익을 당한 사람을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견된 죽음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앞날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억울함을 체험합니다. 억울함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는지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탓입니다. 현실 역시 언제나 부정확하고 엉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세상은 본디 ‘그런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평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생의 억울함을 받아들이면 세례자 요한을 ‘닮는 것’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내려졌던 축복이 그 사람에게도 분명 주어질 것입니다.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에게 원한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악연’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악연도 이끄심이었던 것입니다. 인연에 담긴 신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