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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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자)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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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시편 30(29),11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본기도

주님, 저희가 시작한 참회의 생활을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육신으로 닦는 이 수련을 성실한 마음으로 완성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불의를 끊고 결박을 풀어 주는 것이 단식보다 소중하다. 이사야 예언자는 백성을 꾸짖고 있다. 하느님을 위한 단식이어야지, 사람을 위한 단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제1독서). 단식은 다만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은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속죄와 희생을 체험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단식이란 없다. 그런데도 바리사이들은 단식에 매달리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단식 또한 새롭게 이해하라는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리라. “나 여기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1(50),3-4.5-6ㄴ.18-19(◎ 19ㄴㄷ)
<선창자가 후렴을 선창하면 교우들은 후렴을 받아 반복한다.>
◎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이어지는 시편은 선창자가 하고 교우들은 후렴을 반복한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아모 5,14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사순 시기의 재계를 지키며 이 제사를 봉헌하오니, 저희 마음을 주님의 뜻에 맞게 하시고, 자기를 이겨 낼 수 있는 꿋꿋한 힘을 저희에게 주소서. 우리 주 …….
<사순 감사송>

영성체송

시편 25(24),4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이 사랑의 영약으로 모든 죄의 상처를 낫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스승님의 제자라면 더욱 단식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군요?’ 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답변을 주십니다. 꼭 ‘선문답’ 같습니다.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신랑은 혼인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있기에 혼인식은 잔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머지않아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있으니, 그때 가서 단식해도 늦지 않다는 가르침입니다. 모든 단식을 예수님과 연관시켜 보라는 말씀입니다.
단식은 음식을 절제하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왜 단식하는지에 대한 답변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 때문’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고자’ 단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십자가를 보기에 단식해야 합니다. 주님의 억울함에서 우리의 억울함을 위로받기에 단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단식이 아니라면 그저 ‘고통스러운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단식은 종교적 의식이었고, 일상사였습니다. 속죄와 보속을 위한 강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단식을 당신 수난에 참여하는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평범한 단식을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 승화시켜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