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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3일 토요일

[(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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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117번 지극한 근심에 영성체 성가 169번 사랑의 성사
예물준비 성가 332번 봉헌 154번 주여 어서 오소서
221번 받아주소서 159번 세상의 참된 행복
210번 나의 생명 드리니 파견 성가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 (2,3절)

입당송

시편 103(102),2-3 참조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그분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본기도

주님, 해마다 사순 시기를 지내며 파스카 신비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시니, 저희가 그 신비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시어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실 분이시다. 그분 외에는 아무도 우리를 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그분을 알아야 한다. 바르게 알아야 제대로 섬길 수 있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제1독서). 세리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십사고 청한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 기도는 주님 앞의 고백이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 앞에서의 독백이다. 세리의 기도는 주님께 닿았지만, 바리사이의 기도는 허공을 떠돌았다. 단순한 기도가 힘 있는 기도다(복음).

제1독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1(50),3-4.18-19.20-21ㄱ(◎ 호세 6,6 참조)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애로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 당신의 자애로 시온을 돌보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그때에 당신이 의로운 희생 제사, 제물과 번제를 즐기시리이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ㄹ.8ㄱ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성사에 참여하며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순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루카 18,13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언제나 저희를 천상 은총으로 채워 주시어, 굳건한 믿음으로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기도 내용처럼 나무랄 데 없는 신앙인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의 단식과 소득의 십일조에 충실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보다 세리를 더 칭찬하십니다. 바리사이가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사의 기도가 되었더라면 그 역시 칭찬받았을 것입니다.
많이 가지면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재능이 많으면 드러내고 싶고, 자리가 높으면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본능에 시비를 거시는 것은 아닙니다. 자랑에 앞서 먼저 ‘감사’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불쌍한 세리와 비교해 자랑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리사이의 좁은 소견이었습니다.
세리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죄와 ‘연관된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는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한마디’뿐입니다. 하지만 세리는 깨달음을 안고 돌아갑니다. ‘자신을 낮추었기에’ 은총이 함께했던 것입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나무는 온몸으로 낙엽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야 새싹을 틔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지지 않은 낙엽’은 봄이 되면 오히려 구차해 보입니다. 새싹이 돋는 것을 방해합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