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날 오늘 다음날

2010년 9월 23일 목요일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TV매일미사 업로드 준비중 입니다.

오늘 전례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으며,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수도자로 일생을 살았다. 1910년 사제가 된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봉사하였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1968년에 선종하기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간직하며 살았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9년 5월에 그를 복자로 선포하였으며, 2002년 6월에 시성하였다.

입당송

루카 4,18 참조
주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놀라운 은총으로 복된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주님의 크신 자비를 새롭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코헬렛은 불의한 사회 구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태양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고,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라고 한다. 저자는 백성의 삶의 상황을 몸소 체험한 뒤, 그들의 처지를 만천하에 고발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거침없는 행보에 몹시 당황한다. 그 스스로 세례자 요한을 살해하였음을 실토하면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 거기엔 그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복음).

제1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0(89),3-4.5-6.12-13.14와 17(◎ 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성인들을 공경하며 바치는 이 제물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을 드러내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비오가 정성을 다하여 거행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주님과 헤로데 가문 사이에는 질긴 악연이 존재합니다. 이 악연은 주님의 탄생 전부터 시작되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후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헤로데 가문 사이의 악연은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의 관계입니다. 진리와 거짓, 정의와 불의, 평화와 불화의 관계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헤로데는 탐욕스럽고 권력에 젖어 사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명분과 체면의 틀을 깨지 못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입니다. 반대로 헤로데가 보기에, 주님께서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이시고 진리이십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변명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종교도, 정치도 백성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모두가 백성을 위한 행위이고, 백성이 참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종교이고, 정치이지요.
헤로데는 그러한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드는 가련한 정치의 수장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