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날 오늘 다음날

2010년 10월 24일 주일

[(녹) 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오늘 전례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기념 없음


오늘은 ‘전교 주일’이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들과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10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모든 신자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 전교 주일의 특별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에 보내져,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는 데 쓰인다.

[ 오늘 전례 ]
▦ 오늘은 연중 제30주일이며, 전교 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기도하는 두 사람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행한 공로를 나열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기도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인 동시에 신앙 고백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는 우리의 자화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처럼 주님께 우리 처지를 솔직히 고백하고, 자비를 청하는 자녀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입당송

시편 105(104),3-4 참조
주님을 찾는 마음 기뻐하여라. 주님을 찾아 힘을 얻어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주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지만, 결코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변호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고, 자신의 죽음을 내다본다. 그렇지만 그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두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는 대조적이다. 사실 주님 앞에 무슨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와 은총뿐이다(복음).

제1독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35,15ㄴ-17.20-22ㄴ
15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17-18.19와 23(◎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 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2코린 5,19
◎ 알렐루야.
○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 알렐루야.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제 여러분,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복음을 선포한 선교사들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합시다.
1.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이에게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시는 주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선교 지역으로 떠난 선교사들에게 지혜와 건강을 주시고,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들이 풍성히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평신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로우신 주님, 가정과 사회에서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지키고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
3.고통 받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자이신 주님,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몸소 위로하여 주시고, 저희에게는 봉사의 정신을 주시어, 늘 깨어서 그들의 아픔을 살피고 돕게 하소서. ◎
4.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지역의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가진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이웃들을 만들어 가게 하소서. ◎
+전능하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며 드리는 저희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기도

주님, 주님 앞에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연중 주일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주님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 바리사이와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갑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주님께 행한 공로를 나열하면서 공치사를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니 불쌍히 여겨 주십사고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주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더 애틋하게 여기고 들어주셨겠습니까? 겸손함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애절함이 없는 기도는 오만일 따름입니다. 주님께 기도드리는 우리의 태도가 혹시 바리사이와 닮아 있지는 않은지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기도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출 때만 가능합니다. 대화가 가능하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압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비울 때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기도하는 두 사람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가운데 바리사이는 자신을 낮출 줄 모르고 거만하게 자신의 공적을 나열합니다. 이러면 주님과 대화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겠지요? 대화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솔직한 삶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바리사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데 급급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긴말이 필요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와 은총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도하는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까? 주님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결코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지 않으면서, 주님께는 자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라고 하는 이치가 바로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