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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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7일 월요일

[(홍)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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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초대 교회의 순교자로 유명한 페르페투아 성녀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귀부인이었다.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에 대한 역사를 쓰기도 했다. 203년 무렵 그리스도교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하였다.
펠리치타 성녀는 페르페투아 성녀의 여종으로서,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203년 무렵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하였다.

입당송

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본기도

주 하느님, 복된 순교자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는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의 고통을 이겨 냈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믿음을 굳세게 간직하며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토빗은 아시리아 니네베의 유배지에 살면서도 유다의 전통과 율법을 지키며 진리와 선행의 삶을 산다. 그는 유다 백성의 축제인 오순절에 가난한 동포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고, 길에서 살해된 동포를 유다인들의 장례 전통에 따라 묻어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으로 구약의 역사에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더러는 죽이기까지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행태를 고발하신다. 마침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희생되실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토빗은 진리의 길을 걸어왔다.>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1,3; 2,1ㄴ-8
3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2,1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2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3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4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5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6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7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8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111),1-2.3-4.5-6(◎ 1ㄱ)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 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복음 환호송

묵시 1,5ㄱㄷ 참조
◎ 알렐루야.
○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오늘 복된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천상 승리를 기념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이 제사를 즐겨 받으시고, 그들의 끊임없는 전구로 도움을 받아, 저희가 주님의 위대한 사랑의 업적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2코린 4,11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니,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를 기억하며 받아 모신 성체로 영원한 기쁨을 맛보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주님의 은총으로 정성을 다하여 거행하는 이 성사의 참뜻을 깨달아 충실히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이사 5,7).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서 보듯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말씀은,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고,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보낸 종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의 예언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소작인들에게 매 맞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불의와 부당한 억압을 단죄한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카, 예레미야 등과 같은 예언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와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한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아니 전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마음입니다. 마치 자식에게 속는 줄 알면서도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보내 주는 부모 마음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매 맞고 박해받고 죽임을 당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 종을 보내십니다. 이런 바보 같은 하느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그 절정에 이릅니다.
한 개인의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 사랑은 이렇게 다가옵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포도밭’을 잘 가꾸어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얼마나 많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사는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소리를 무시하면서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지요. 바보 같은 하느님 사랑은 이렇게 우리 삶 안에서 상처 입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먼 옛날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