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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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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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성 요셉 다미아노 사제 기념 허용

입당송

시편 31(30),10.16.18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짓눌리나이다.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주님,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본기도

주님,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나약한 탓으로 저지른 죄의 사슬에서 저희를 인자로이 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를 두고 사람들이 “마고르 미싸빕”이라고 불렀다. ‘사방에서 공포가’라는 뜻으로 예언자의 고통스러운 삶의 한 단면을 말해 준다. 예레미야는 사방에서 다가오는 박해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아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찬양을 드린다(제1독서). 예수님의 정체성 문제로 끊임없이 유다인들과 갈등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시어 그곳에 머문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는 하늘의 음성을 들은 곳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8(17),2-3ㄱ.3ㄴ-4.5-6.7(◎ 7 참조)
◎ 곤경 중에 나 주님 불렀더니, 주님이 내 목소리 들으셨네.
○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 ◎
○ 주님은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시옵니다. 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 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 ◎
○ 죽음의 오랏줄이 나를 두르고, 멸망의 급류가 나를 삼키며, 저승의 오랏줄이 나를 휘감고,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덮쳤네. ◎
○ 곤경 중에 나 주님 부르고, 하느님께 도움 청하였더니, 당신 성전에서 내 목소리 들으셨네. 부르짖는 내 소리 그분 귀에 다다랐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ㄷ.68ㄷ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의 제단에 나아가, 이 영원한 제사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주님 수난 감사송 1 참조>

영성체송

1베드 2,24 참조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셨네. 우리는 죄에 죽고 의로움에 살게 되었네. 그분의 상처로 우리 병이 나았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성체의 힘으로 주님과 저희를 하나 되게 하시며, 주님의 보호로 온갖 해로운 것에서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신앙이 확고하고 충실한 것 같지만 때로는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으로 파괴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종교적인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도 이런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와 결탁하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주변 사람에게 오히려 종교적 혐오감을 낳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그들 개인은 깊은 신앙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왠지 상식과 기본 질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신앙이 깊어질수록 종교적 근본주의자가 되거나 광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등 이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삶 속에서 맺는 것입니다(갈라 5,22 참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는 유다인들의 파괴적인 행동을 봅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그들 안에서 신앙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폭력을 휘둘러서라도 율법과 자신의 종교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냉혹함만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따뜻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종교적 근본주의나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마저도 차갑고 냉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