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날 오늘 다음날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TV매일미사 업로드 준비중 입니다.

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9번 옹기장이 영성체 성가 172번 그리스도의 영혼
예물준비 성가 514번 주여 대령했나이다 164번 떡과 술의 형상에
216번 십자가에 제헌되신 152번 오 지극한 신비여
파견 성가 65번 예루살렘 복되고

오늘 전례

<연중 제29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7(16),6.8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며, 언제나 정성스럽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유다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하며 성전을 통하여 만군의 주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임을 선포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자신이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죄 때문에 혼란 속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받으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9,1-2.3-4.5-6ㄱ과 9ㄴ(◎ 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주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오니, 저희의 온갖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목숨을 구하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의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 벽화나 상형 문자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모로 그리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범죄를 하면서 모서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하고 맙니다. 결국 어른이 되면 잘못을 해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양심을 가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 어느덧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인 요한의 생명을 잔칫상의 오락거리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자신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두려움과 정치적 생존 본능만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게 하며, 양심이 무뎌지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하고 맙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