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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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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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연중 제20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84(83),10-11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든 소망을 넘어서는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와 주님을 통하여 그분께 나아간다. 우리 인간은 감히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는 오로지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영광을 드리고 감사드려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사랑과 연민의 마음 안에는 이들이 늘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 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9(68),30-31.33-34.36-37(◎ 14ㄷ)
◎ 주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 가련한 저는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
○ 하느님은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아,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8,31ㄴ-32ㄱ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닫게 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네 친구를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12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을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받아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성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언젠가 시골 공소에 갔다가 도시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내려와 살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곧 서품 받을 아들을 두었다는 그 형제는 세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는 분이었습니다. 우연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분이 취기가 약간 오르자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사제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면 부자도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자를 먼저 이해하면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가난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부자의 영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제가 부자들과 어울린다고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과 함께할 때 부자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오래 전 만남이지만 그분의 말이 잊히지 않고 마음에 박혀 있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오늘날 교회는 이미 신자본주의의 물질적 우상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 말에 따르면 부자들만이 교회의 현실이 되고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관념 속에 머물러 있을 때, 교회 안의 세속주의는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때, 비로소 복음의 의미도 교회의 존재 이유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를 가까이하고 받아들일 때 부유한 이도 이해하고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달리, 가난한 이들은 직접 찾아 나서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소유로 신분의 경계를 짓지만, 교회는 복음적 가치로 그 경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과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