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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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일 수요일

[(자) 위령의 날 - 첫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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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위령의 날은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입당송

1테살 4,14; 1코린 15,22 참조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듯이, 하느님은 죽은 이들을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데려가시리라.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나리라.

본기도

주님,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저희의 믿음을 깊게 하셨으니, 저희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지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욥은 친구들의 몰이해 속에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그분을 뵙기를 갈망한다(제1독서). 희망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근거이다. 신앙인은 이루어질 구원의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희망하는 바를 믿는 것은 이미 삶 속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다(제2독서). 우리 삶 속에는 참된 행복이 숨어 있다. 가난해도, 슬픔 속에서도, 때로는 온갖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은 그 안에 있다. 그 행복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하늘 나라를 이미 사는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1.23-27ㄴ
1 욥이 말을 받았다.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7(26),1.4.7과 8ㄷ과 9ㄱ.13-14(◎ 13 또는 1ㄱ)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또는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자비를 베푸시어 응답하소서.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제2독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25,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충실히 선포하고, 천상 행복을 미리 맛보며 즐거워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주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함부로 파괴하고 폭력과 전쟁을 일삼는 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깨우쳐 주시어, 저희 모두 악행을 멀리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게 하소서. ◎
3.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와 함께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이의 일치를 바라시는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다가가며 세상에 빛을 밝히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
+ 주님,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저희가, 하느님 나라를 그리며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기도

주님, 성자께서 세우신 사랑의 큰 성사로 하나 되어, 저희가 바치는 제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이 성자와 함께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
<죽은 이를 위한 감사송>

영성체송

요한 11,25-2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을 위하여 파스카의 신비를 거행하고 비오니, 그들을 빛과 평화의 나라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저울에 행복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 불행 49% 행복 51%면 /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 행복의 조건엔 /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 …… //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행복하다고 …….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무게를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말 못할 슬픔이 잠겨 있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열과 행복이 감추어 있습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신앙인은 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1%의 차이가 우리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 말은 성과 속의 저울 양편에 놓인 우리 마음처럼 1%만 더 주님께 관심을 기울여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의 삶에는 가난해도, 슬퍼도, 때로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른 행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1%의 마음 기울기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