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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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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77번 주 천주의 권능과 영성체 성가 155번 우리 주 예수
예물준비 성가 332번 봉헌 497번 거룩하신 성사여
211번 주여 나의 몸과 맘 197번 나그네 양식이요
파견 성가 204번 주의 성심 홀로

오늘 전례

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안고 수도회를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 선교사로 모로코에 파견되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탁월한 설교로 파도바의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었다. 그러나 1231년 열병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안토니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한 이듬해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 시성되었다.

입당송

루카 4,18 참조
주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저희에게 뛰어난 설교가로 보내 주시고, 어려울 때에 그의 전구를 들어주시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곤경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임금과 백성은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다. 이때 엘리야 예언자는 거짓 신 바알의 예언자들과 겨루어 물리침으로써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없애시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기본 정신을 되살리고 보완하여 완성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복음).

제1독서

<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20-39
그 무렵 20 아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들을 카르멜 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1-2ㄴ.4.5와 8.11(◎ 1)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
○ 다른 신들 붙좇는 자들의 고통이 크기에, 저는 그 신들에게 피의 제사를 바치지 않으며, 그 이름 제 입술에 올리지도 않나이다. ◎
○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시편 25(24),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성인들을 공경하며 바치는 이 제물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을 드러내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안토니오가 정성을 다하여 거행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도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어린아이들에게 부드럽고 솔직하며 참을성을 가지고 대할 것. 불친절과 분노 또는 야박한 말을 입에 올리지 말 것. 남에게 나의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이나 일이 많다고 말하지 말 것. 시간을 정확히 지킬 것. 작은 수고에 대하여 위안을 찾지 말 것.” 윌리엄 도일 신부가 자신의 신심 생활을 반성하며 결심과 지향을 적은 글입니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큰 것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라거나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하면서 이웃을 위한 봉사나 헌신을 어려워합니다. 윌리엄 도일 신부는 이러한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큰 선행을 하고 나면 외적인 영예가 따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자신만이 아는 작은 선행이나 친절은 그 대상과 기회가 무한하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소유와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웃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가엾은 마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처지와 여건에서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랑을 베풀 대상과 기회는 참으로 많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