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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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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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십자가의 요한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하다가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로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 생활의 스승 역할을 하였다. 1591년 세상을 떠난 그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1926년에는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둔 밤』, 『영혼의 노래』 등은 영성 신학의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입당송

갈라 6,14 참조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요한 사제에게 십자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온전히 자기를 버리게 하셨으니, 저희가 영성 생활의 스승인 그를 본받아, 마침내 영광스러운 주님을 뵙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이르신 계명을 저버렸다. 주님의 계명 안에 평화와 의로움과 축복이 담겨 있는데도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저버린 백성에게 안타까움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한탄하신다. 그들은 회개하는 마음이 없으니 하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요한 8,12 참조)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오시니 마중 나가자. 주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요한을 기억하며 바치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고, 저희가 거행하는 거룩한 수난의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또는 성인 감사송: 198면 참조>

영성체송

마태 16,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복된 요한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오묘하게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 안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요한 세례자가 광야에서 회개와 세례, 죄의 용서를 부르짖자 그를 마귀가 들린 사람이라고 여기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대를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놀이하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당시의 세대가, 아이들이 장터에 모여 한쪽에서 춤을 추면 상대편에서 곡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 곡을 하면 맞은편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맹자』에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임금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은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백성과 늘 함께한다면 임금이 즐기는 것을 백성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민동락’은 백성을 위한 통치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통치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심보가 고약한 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사목 헌장’에서는 변화하는 현대 세계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헌장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무릇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이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슬픔과 고뇌에 함께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만일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